제목 | Re:코니시 유키나가에 대하여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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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영훈 | 작성일2008-05-22 | 조회수1,001 | 추천수1 | 신고 |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자면 임진왜란을 이끈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조선정벌에 앞장선 선봉장이었으나, 일본 가톨릭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치적 관계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한 것 이외의 신앙생활의 면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 영주로서 가장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영주가 많지는 않았지만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때문이 아니라, 실은 서양의 무기를 쉽게 지원받기 위한 책략에 지나지 않았던 영주들도 있었습니다. 서양선교사의 입장에서도 영주 한 명이 신자가 되면, 그 영지의 모든 백성이 신자가 되었으므로 영주가 신자가 되는 것이 선교에 있어 용이했습니다. 그러나 코니시 유키나가는 표면적으로만 신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싫어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그늘에 있으면서도 천주교 신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잃어버리지 않고, 당시의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겨졌던 자살을 택하지 않고 참수를 택하였으며 직전에는 불교 승려의 경문을 거부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죽음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코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에 내세운 이유는 그가 천주교 신자 영주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코니시 유키나가는 조선정벌에 있어 예수회 사제를 군종사제로 임명하여 임진왜란에 참여할 정도로 신앙에 열심이었습니다. 그의 죽음 후에 선교사를 통해 그의 이름이 유럽에 알려졌으며, 진위여부는 불분명하나, 당시 교황님도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코니시 유키나가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일본 가톨릭의 대표문인인 엔도 슈사쿠가 지은 "숙적"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는 모양입니다. 번역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참고로 한 사이트의 참고도서중 하나가 그것이네요. 참고사이트 : http://ja.wikipedia.org/wiki/%E5%B0%8F%E8%A5%BF%E8%A1%8C%E9%95%B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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