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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엘리야, 물질주의를 꾸짖는 하느님의 목소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2,637 추천수0

[성서의 세계 구약] 엘리야, 물질주의를 꾸짖는 하느님의 목소리

 

 

하나의 프로그램인 이름

 

엘리야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르멜산과 거기서 예언자가 사백오십 명의 바알 사제들에게 집행한 하느님의 심판을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바알이여, 들어주소서.” 반복되는 그 사제들의 부르짖음은 끊임없이 우리 귀에 들려 오는 듯하고, 또한 엘리야의 빈정거림도 되살아나는 듯하다. “더 크게 불러 보아라. …… 혹은 잠이 드셨는지도 모르니 어서 깨워 보아라”(1열왕 18,27).

 

엘리야의 삶에서 단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인 이 이야기에서도 이 예언자의 정확한 초상화가 우리에 제시된다. 그는 바알의 추종자들에 맞서서 우상 숭배를 거슬러 싸우는 자이며,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정력적인 방어자다. 그리고 그의 이름 자체도 하나의 모토와 같다. 엘리야(Eli-Jah)는 “나의 하느님은 야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엘리야의 출현은 물질적인 축복과 문화를 누리던 시대와 일치한다.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여로보암과 함께 대략 사십 년간 함께했던 남쪽 지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놀라운 일치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작은 유다 왕국에 비해 훨씬 더 거대한 왕국이었으며 거기에다 그 국경 내에 크고 비옥한 골짜기를 보유했다. 이러한 동기들 때문에 특히 885년부터 874년까지 통치한 오므리 시대에는 놀라운 번영을 이루었다. 성서는, 적어도 이스라엘의 경우, 물질적인 진보가 종종 정신적인 쇠퇴를 뜻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오므리 시대가 그랬다.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 않고 그만큼 물질적인 면과 부 그리고 편익을 존중했으며, 곧 자신의 힘을 유일하게 믿기에 이르렀다. 예배 행위에 있어서도 낯선 세력과의 접촉이 이루어졌으며, 자신의 하느님을 잊었다. 게다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시돈의 이교도 공주 이세벨과 결혼했다. 그리고 이 두 명의 왕과 왕후가 나라를 다스리던 때 이스라엘의 일신교는 파멸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백성은 그들의 하느님 야훼를 송두리째 버렸고, 하느님께 계속 충실하고자 한 사람은 박해를 받고 살해되었다.

 

이러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쇠퇴를 보고 엘리야는 하느님과 함께 비탄에 잠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고 ……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예언자라고는 저 하나 남았는데 그들이 저마저 죽이려고 찾고 있습니다”(1열왕 19,14). 이세벨에게 쫓기는 동안에 엘리야는 그 박해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았다. “네가 예언자들(바알의 사제들)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내일 이맘때까지 반드시 죽이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천벌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내가 받으리라”(1열왕 19,2).

 

이렇게 고통스럽고 거의 절망적인 상황을 생각하면서 엘리야는 -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 자신의 직무를 거부하고 항복해야겠다는 유혹을 느꼈다. 그러기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는 목숨을 건지려 유다의 브엘세바로 도망가 거기에 시종을 남겨 두었다. 그리고 자기는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가서 싸리나무 아래 자리잡았다. 그는 죽여 달라면서 부르짖었다. “오, 야훼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선조들보다 나을 것 없는 못난 놈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싸리나무 덤불 아래 그대로 누워 잠들었다(1열왕 19,3-5).

 

그러나 그러한 일시적 낙담 뒤에 엘리야는 하느님과의 만남 안에서 도움을 발견하게 된다. 천사 하나가 그를 깨워 - 그에게 여행용 음식을 제공하고, 이것으로 기운을 차린 엘리야는 시나이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신비스러운 신현(神顯)이 일어난다. 야훼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가 일생 동안 그분을 위해 투쟁한 바로 그 하느님이셨다. 이 발현은 그에게 새로운 힘을 준다. 주로 아합과 이세벨 가문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야훼의 이름으로 착수된다.

 

신현이 엘리야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고 그것으로 그의 활동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예언자가 무대에 들어섰으며 그의 첫 번째 열정은 어디에 그 바탕을 두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그의 첫 번째 활동은 이후의 활동보다 덜 정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야훼를 위한 싸움은 수많은 기적이 동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성서의 독자는 엘리야의 활동에 보이지 않는 은총,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언자가 자라 온 환경에 연결되어 있는 내적 부르심이 선행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 여기서 그가 이스라엘의 요르단 건너편에 있는 작은 마을 티스베 출신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국경 지방에는 사마리아의 사치가 뚫고 들어오지 못했고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손상되지 않고 지켜졌다. 이러한 일신교적인 분위기에서 엘리야는 우상 숭배의 탈선 소식을 듣고 열정을 불태웠으며, 은총은 그를 왕국의 중심부, 사마리아의 궁전에까지 몰아붙였다. 그는 궁정의 우아함과 부패에 대한 전원 생활의 메아리 혹은 더 낫게는 반란이었고, 물질주의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목소리였다.

 

 

비범한 일들과 화술(話術)

 

열왕기는 긴 성서 역사 가운데서 솔로몬에서 바빌론 유배에 이르는 시기만을 기록한다. 기원전 950년에서 586년에 이르는 이 시기에 이스라엘 문화와 역사는 놀라운 영광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이렇게 흥미로운 이 시기가 무미건조한 평론과 도식으로, 이름과 날짜의 단조로운 열거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다스린 왕들은 모두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암시도 없이 혹은 거의 그들 시대와 관련된 고문서고의 일부로만 남아 있다. 따라서 열왕기는 “도식화된 역사”라고 명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전망 속에서 이런 무미건조한 도식이, 진정 신선하게 나타나고 현실과 연결되는 예외적인 두 인물을 의도적으로 지극히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두 차례나 단절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두 이야기는 엘리야와 엘리사에 관한 것이다.

 

엘리야 이야기는 아합이 언급될 때 저 무미건조한 도식을 차단하고(1열왕 16,29), 한편 아합의 아들 여호람 시대는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의 공적에 의해 원기와 활기를 찾는다. 이 두 예언자상에 대한 진술은 그만큼 근원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신선함으로 빛나고 있기에, 도식적이고 감정이 없는 저자가 어떻게 자신의 문화적 경향에 있어서 그러한 식으로 자신의 경향을 부인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쉽게 제기하게 한다.

 

그렇듯 생생한 이 이야기 군은 하나를 다른 것 옆에 가져가 두 줄로 확실히 세워 놓을 때 훨씬 더 주목할 만하게 된다. 그 경우에 두 이야기 군의 첫 번째 사건들이 상당한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엘리야의 첫 번째 출현은 비정상적인 가뭄이 닥친 사기와 일치한다. 가뭄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궁핍을 겪고 있을 때 엘리야는 기적으로 사렙다의 과부를 구원한다. “엘리야가 전한 야훼의 말씀 그대로 뒤주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의 기름도 동이 나지 않았다”(1열왕 17,16). 얼마 후 과부의 아들이 죽자 엘리야는 초상집으로 가 아이 위에 엎드려 그를 살려내 어머니에게 준다(1열왕 17,24).

 

엘리사의 첫 번째 출현도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묘사된다. 한 과부의 가족이 반쯤 찬 병 속에서 결코 줄어들지 않는 기름으로 구원받는다. 그리고 얼마 후 수넴의 한 가족 중에서 외아들이 죽자 엘리사는 상을 당한 어머니로부터 예리한 비난을 듣게 된다. 그러자 그도 엘리야처럼 죽은 아이 위에 엎드려서 그를 살려내 부모에게 넘긴다(2열왕 4,18-37). 이 두 번째 이야기 군에서 밀가루의 기적은 빵을 많게 한 기적으로 기름의 기적과 분리된다(2열왕 4,42-44).

 

두 이야기 안에 담긴 유사성은 해석학자들에게 특별한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이야기의 진설성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실이 실제로 그처럼 유사하게 반복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반복이 오로지 저자의 작업 탓이라면 그는 유능한 이야기꾼일 것이나 참된 역사가는 아닐 것이다. 그것으로 열왕기와 성서 전체의 진실성이 불신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두 명의 대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도 역사적인 등장 인물로서 끝장이 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믿는 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려움들에 대해서 신중한 해결을 찾을 필요가 있다.

 

첫째로 이미 그 진실성의 보증이 되고 있는 두 이야기 군의 생생하고 근원적인 특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에서 상기한 결과들 곁에는 아주 중대한 차이점들이 있다는 것, 즉 엘리야의 삶은 엘리사의 삶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엘리야는 정치적인 적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고독한 투쟁가이나, 엘리사는 이른바 예언자의 아들들이라는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항상 둘려 싸여 있다. 게다가 그는 정치적인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직접 전장으로 행군해간다. 마지막으로 엘리사의 삶은 이보다 덜 중요한 작은 기적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다양성이 분명히 각자의 고유한 성격은 압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또한 아주 분명한 몇 가지 유사성들은 주목되어야만 한다. 두 이야기 군은 예언자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나아가 상투적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제시한다. 여기에서 예언자들을 묘사하는 결정적인 방식, 즉 예언 기록의 고유한 양식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는 분명히 이러한 문학 유형 안에서 아주 오래 된 것이고, 열왕기의 저자는 그것들을 이미 있는 자료로 수집했다. 즉 그것들은 몹시 오래된 것이며 기원전 9세기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삶에 대한 원초적인 보고서 같은 것이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1년 5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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