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 고해성사의 최고 요건은 통회입니다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하경호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22 조회수5,355 추천수0 신고
고해성사를 보고 나왔는데 예전에 지었으나 잊어버리고 있던 대죄가 생각이 났어요.

다시 고해성사 봐야하나요?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죄에 다 들어가니까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도 계셨는데..전 맘이 안편하네요..

제가 가톨릭 교리서까지 찾아봤는데 정말로 대죄였습니다..그래도 기억 안나서 못한거면 다 용서 되나요? 제가 믿음이 부족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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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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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제자 베드로 착좌 기념일을 밝혀주시는 주님, 그전의 "쿼바디스 도미네" 베드로 성인께 발현 하시었사오니 저희도 지난날 에로스 발자국, 지금도 부족한 아가페 아닌 에피투미아조차 주님으로 뵈옵는 그날까지 영안 주시오니 김수환 추기경님 두 눈을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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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를 보는것만으로도 큰 축복입니다. 그렇게 참례하고자 하는 의지는 더 좋은것이지요.

죄는 알고 짓는 대죄와 모르고 짓는 소죄가 있답니다. 어떤 할머니가 신부님께 죄를 고해하라니 "사는게 죄죠"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냉담하는 필자의 딸은 어린 시절 단 한 번 고해가 전부인데 "신부님께 무슨 죄를 고해했니?"라고 물으니 "몰라" 하기에 "그럼 어떤 보속을 주셨니?"하고 물으니 "모르겠어"라고 한게 전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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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로서 참 부족한 죄인이지요. 필자는 13년차 별거중이라 광야의 들나귀같은 사람이랍니다. 따라서 필자의 조언을 맘에 두진 마시고 다만 신앙 전배로서 부담없이 참고만 하시길 바랍니다. 일단 다음 미사때 시작예식(입당성가-입당-인사-참회-자비송-대영광송-본기도)때 함께 하시고 계속하여 진화하는 생명체 맘으로 정기적 고해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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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이 불편한 것도 좋은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편할 때보다 더 주님을 찾게 되는데 세속 분들 "꿈은 왜 반대로 이루어지지?"하는 물음표 등도 있을겁니다. 그런가 하면 기도하면 무관심하던 몸도 여기저기 쑤시거나 아파올 때가 있는데 역시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현상이라 할 수 있지요. 따라서 고해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결벽증일 수 있는 심리도 또한 좋은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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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회심으로 진화하는 생명체니까요. 그러다면 여기서의 생명체는 무엇일까요? 성체인 것입니다. 오늘은 로마 가톨릭 초대 교종 성하이신 베드로 성하 착좌 기념일이죠? 구약의 1독서 후 신약의 예수님 복음 말씀에서 베드로는 당시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합니다. 라삐나 단순 내 안위의 친구도 아닌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충성심이나, 복종이 아닌 베드로의 절대 믿음를 보시고 칭찬해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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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모르고 일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세속에선 왜 하는 일마다 또는 하는 사업마다 망한 사람들이 더 많을까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 시청률은 왜 높고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에서 가장 편하다"라고 이야기들 할까요? 그것은 도시인들 우리 모두가 때때로 불편한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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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드로 성하는 착좌전에 세상에서 더 큰일을 해야 할 분이라며 교형, 자매님들의 극구 만류로 순교 치명 가능성이 높은 로마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주오는 십자가를 짊어진 피투성이 청년을 보았고 다가서니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를 가시나이까?라고 물으니 "네가 박해 받는 자녀들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내가 가기 싫은 콜고타를 다시 간다"라고 말씀하시어 곧 되돌아서 로마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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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우리가 순교자들의 치명을 보고 존경심을 갖지만 과연 생활 속의 순교 현장에서 베드로 성하처럼 얼마나 돌아 올 수 있을까요? 그 모든 것 사실은 내가 결정하는 것 아닌 주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주님께 오픈 마인드로 열어드리면 자동인 것입니다. 필자가 딸과 아들을 냉담으로 방치하는 것은 가장으로서 형제님보다 더 심각한 대죄이고 무책임입니다. 주님 영이 아닌 고스트(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필자가 형제님에게 조언을 할까요? 여기에 신앙의 신비가 담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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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도 하려면 삼박사일로도 모자랄테니 대략 남편이 먼저 믿으면 성 가정 금방 되고 아내가 먼저 믿으면 뜸이 오래간다. 정도로 매듭 짓기로 하고 그렇다면 베드로 성하가 마주한 피투성이 주님의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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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 십자가
2. 회개한 우도의 십자가
3. 회개히지 못한 좌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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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내가 고해 하고자 하는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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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시어 무고하심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필자는 어제 사순 1주일 평화 방송 미사 감곡 성당의 강희성 펠릭스 신부님 강론을 함께 접목하고 있는데

좌도, 우도 또한 예수님과 똑같은 십자가로서 똑같은 죽음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우도는 회개하여 성인 품에 올랐고 좌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 십자가나 살려 보라"며 원망과 탄식으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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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님은 우리가 믿는 십자가가 어떤 십자가인지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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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드로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따랐으나 발을 닦아드릴 자격 없다시며 거꾸로 못 박히는 십자가
2. 미사 전례와 말씀을 성실히 하고 주변 이웃과도 원만하지만 유사시 하느님보다 돈과 명예 십자가로 죽을 때 즉시 배반 당하는 모습에서 참회하는 십자가
3. "내가 그렇기에 너도 그렇다"며 좌도처럼 예수님을 자신 사고로 가둬 놓고 절규로 죽어가는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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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모든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2, 3번의 십자가가 아닌 베드로처럼 완전한 겸손과 섬김으로의 자유의 십자가를 권고하고 계십니다. 이는 현 266대 프란치스코 1세 교종 성하의 모습을 보면서도 또한 도력 깊으신 신부님, 수녀님들, 교형 자매님들의 자유 미소를 보면서도 유추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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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고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필자는 베드로가 물은 쿼바디스 도미네의 십자가 예수님이 어떤 십자가를 짊어지셨는지 모릅니다. 다만 주님 말씀을 전할 뿐이니 필자 말은 곧 잊어도 무방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죄에 대한 식별의 영안 밝혀주시는 성령 은총으로 그것에 머물지 않고 마침내 사랑으로 갈 수 있는 기쁜 소식으로 모두를 조금씩 더 사랑할 수 있는 오픈 마인드로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이길 믿고 싶은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황당무게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주님 입장이라면 아니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한다면 또한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때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3번 십자가는 그리스도 안의 한 핏줄은 모든이를 생각과 말로만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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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가 되기 위해서는 금 또한 불로 달구듯이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또한 나의 탤런트로 쇄신을 즐겨야 가능 하듯 방법은 고통의 신비로 피할 수 없을 때 즐겨 나갈 수 있도록 오직 주님만을 더욱 먼저 친교해야 하기에 하느님 한분만을 소유한 성직자들이 그토록 자유로우시고 평화로운 것입니다. 우린 많은 계산과 위선과 쉬운 것들에 손을 적신 나머지 교만, 불안, 게으름의 늪을 지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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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드로 성하께서는 다만 주님께서 "안심하라,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노라" 하시며 두려움 없는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기도는 사실 나약한 우리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순서 상 엉덩이로 하는 것이기에 형제님의 그 의지 소중한 것입니다. 분심이 들 때는 엉덩이를 찰싹 때려보세요^^ 놈들의 방귀로 위장 술책에 이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가 있지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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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면 궁금한대로 고민스러우면 고민스러운대로 여기 많은 형제, 자매님들과 상담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의무감이나 해치움으로 성사 생활을 하면 필자처럼 세상 속 거지 꼴 납니다. 지나친 겸손인 교만으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33년 외사랑과 13년 별거와 어젠 묵주기도 덕에 2013. 1. 1 온라인을 떠난 미국 교포 천사 은하 작은별 친구에게 화세명과 전대사 양도를 전해야겠다는 착상도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수많은 유혹과 질곡의 죄인을 초대하신 하느님께 영광 올리며 방금 전 애피소드 하나 더 소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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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님과 기차 통학 하신 선배 성직자 중 역시 아프리카 선교로 인해 움직이는 종합 병원 성바오로 미디어 심수사님이라고 계십니다. 신부님 추모곡 '사랑의 꽃'을 작시 봉헌하신 분이죠. 오늘 묵주 기도로 발칸향 생성 시간대에 동네 심야 공원을 한 바퀴 돌은 후 SNS를 보니 두 분 기차 통학했던 인천교구 답동 성당이 보이더군요. 하여 어떤 자매님이 "답동 성당인가요?" 하는 물음도 보며 필자도 한 줄 참여했는데 다시 보니 그녀는 유낙양 베로니카 자매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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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오래 참여하신 분은 익숙한 자매님으로 신랑을 오래전 숙환으로, 치매 어머니 또한 우리 귀여운 엄마! 하면서 휠체어 마지막 케어까지 기도 공로를 쌓은 영적으로 매우 건강한 자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필자 별거 아내를 두고 왜 33년 된 와사랑 그녀를 관심 갖느냐는 한 마디에 대화문을 잠근지 10여 년이 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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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성하처럼 주님을 못 알아듣고 당시 내 안에 갇힌 기복 신앙으로 2. 3번 십자가를 두 개나 짊어져야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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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이시네요. 더 건강해진 느낌이 듭니다"하며 당시 무거운 침묵 가운데 전혀 대답 안할 때 몹시 가슴 아파하던 누님께 친등을 신청, 곧바로 그 고리를 연결해주셨습니다. 그 당시는 도덕 불감증으로 워낙 아프시어 돌아가셨겠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처럼 자매님을 다시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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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낙양 베로니카 자매님 역시 움직이는 종합 병원이었으나 필자는 더욱 건강해진 그 모습을 믿습니다. 필자 대자도 자매님처럼 죽음보다 괴로운 전신 류마티스를 목발 짚고 그 고통의 신비로 하루 묵주기도 100단으로 완치되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성령 힘은 모든 걸 치유해주시고 그녀의 성실한 천국 적금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녀 역시 도력이 깊어 다음과 같은 화답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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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온라인 미사 시작합니다"

이에 "함께 합니다" 하고 검색해보니 못 찾고 여길 왔는데 잊혀졌던 기억으로 외국이라 그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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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 만에 만나는 임은 짧은 대화 속 깊은 대화가 이어집니다.

형제님처럼 순수한 엄마 아빠와의 정담도 소중한 것이니 행복한 사순 1주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구름위 하느님 연줄 꼭 잡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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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줄에 나타난 기도가 다소 복잡할 수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으면 주변 교형 분들과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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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슬픔 함께 아침을 시작합니다

남편을 오래전 잃은 한 아내 울고 있습니다

늘 씩씩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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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머니를 보냅니다

쓸쓸한 모습으로

최후까지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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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기일 우연히 만난 그녀

움직이는 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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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신명나게 삽시다

평화를 빕니다.가 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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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앵무새처럼

사. 행. 신. 평이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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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위로 더해봅니다

그녀의 가슴으로 잉태되는 치매 엄마

모녀 마음 다시 만나

순간의 탄생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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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으로 오르는 엄마 바라볼 때

지상에는

바람처럼

비처럼

눈처럼

희로애락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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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棠花 하경호

2009. 3. 30(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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