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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주님 부활 사건과 부활하신 주님의 실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18 조회수2,644 추천수0

[부활 특집] 주님 부활 사건과 부활하신 주님의 실재


주님 부활, 새 생명의 길 열어

 

 

- 주님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첫 사람으로 우리 부활의 근원이 되신다. 성화는 카르바조가 1602~1603년께 그린 '성 토마스의 의심'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토대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라는 선포는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주님 부활은 인간 역사 안에서 일어난 유일무이한 실제 사건이다. 신약 성경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던 이들의 증언과 고백이 담겨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보았다”고 말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성경 속 주님 부활의 증인들을 통해 주님 부활 사건과 부활하신 주님의 실재를 정리해 보았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5장 내용을 새겨보자. 네 복음서가 쓰이기 훨씬 이전인 서기 52~57년 사이 어느 해 파스카 축제가 가까운 봄에 바오로 사도가 쓴 이 서간에는 ‘주님 부활’에 관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증언과 고백이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3-14)

 

 

주간 첫날에 일어난 파스카 사건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사흗날에 부활하셨다고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사흘 곧 3일은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아브라함은 사흘째 되는 날에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칠 장소를 보게 된다.(창세 22,4) 또 요셉은 사흘 만에 그의 형제들을 옥에서 풀어주었고(창세 42,18), 요나는 사흘 밤낮을 하느님께 기도드린 후에야 물고기 배 속에서 구출될 수 있었다.(요나 2,2) 이렇게 구약 성경은 사흗날을 ‘해방’ ‘구원’ ‘죽음으로부터의 승리’를 의미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사흗날에 부활하신 것은 그 자체가 ‘구원의 결정적 사건’임을 드러낸다.

 

 

빈 무덤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묻히신 지 사흗날 곧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시신을 염습하기 위해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빈 무덤이 주님 부활에 대한 직접적이고 확실한 증거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빈 무덤은 주님 부활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며 핵심적 징표임은 분명하다. 시신이 남아있는 무덤에서 부활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빈 무덤을 목격한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에 주님 부활에 관해 군중에게 처음으로 이렇게 설교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 2,29-36)

 

빈 무덤은 또한 예수님의 육신이 썩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부패와 부활은 양립할 수 없다. 부활은 주님께서 죽음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그분의 존재 안에서 생명이 죽음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몸이 무덤에 놓여 있었더라면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목격 증인들

 

주님 부활의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다. 성경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본 목격 증인들이 나온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먼저 케파 곧 베드로 사도에게 발현하셨고, 이어 사도들에게, 또 한 번에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에게도 발현하셨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오로 서간 등 신약 성경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예루살렘과 갈릴래아, 그리고 엠마오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목격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밝힌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만지게 하시고, 함께 식사하심으로써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신다.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끄시며(루카 24,39 참조),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나타나 부활하신 당신 육신이 수난의 흔적을 아직 지니고 있는,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육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요한 20,20.27 참조)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여느 인간과 같은 인간으로서 목격자들 앞에 나타나셨다.

 

눈여겨볼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본 이들이 하나같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루카 24, 16; 요한 21,4 참조) 심지어 베드로 사도도, 사도들도, 마리아 막달레나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주님께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이가 없었다. 자신들 앞에 계신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요한 21,12 참조)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제자들은 돌아가시기 전 수난의 흔적을 당신 육신에 그대로 지니고 계셨는데 왜 부활하신 주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교회는 이 물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과 같으신 분이시지만 부활을 통해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지셔서 당신의 신성을 더욱 드러내시는 새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참되고 실제적인 육신은 영광스러운 육신의 새로운 특성들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육신은 이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나타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인성은 더 이상 지상에 매여 있지 않고 다만 성부의 신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정원지기의 모습이나 제자들에게 친숙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 등 얼마든지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이는 분명 그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45항)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이 수난 전에 야이로의 딸, 나임의 젊은이, 라자로 등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신 것이 아니다. 이들은 주님의 권능으로 지상의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을 뿐이다. 이들은 다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이들의 되살아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주님의 부활은 지상으로 회귀하는 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당신의 육신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신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통해서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진다. 예수님의 몸은 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하늘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46항)

 

 

주님 부활은 인류 부활의 원천

 

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라고 선포했다.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2)라고 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과 연결되는 이유는 뭘까? 주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 부활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이에 교회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첫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은 우리 영혼을 의화시키심으로써, 장차에는 우리 육신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 자신 부활의 근원이 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58항)라고 고백한다.

 

이는 주님의 부활이 세상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과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보여 준다. 주님의 재림이 모든 인간의 부활을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이끌려 간다. 이는 우리가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2코린 5,15) 이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우리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증거자들에게 귀 기울이고, 주님께서 당신 자신과 증거자들을 언제나 새롭게 공적으로 증거해 주시는 표징들에 우리 자신을 열 때, 우리는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강조했다.(「나자렛 예수」 2권 344쪽 참조)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4월 17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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