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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마케도니아 최초 교회를 형성한 필리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02 조회수4,220 추천수0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마케도니아 최초 교회를 형성한 필리피

 

 

- 필리피의 로마 시대 야외 극장(BiblePlace.com)

 

 

마케도니아로 건너온 바오로 일행은 이 지방 최대의 도시 필리피에서 말씀을 전하여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와 그 집안을 신자로 만듭니다. 바오로가 마케도니아 땅에서 이룬 첫 선교 결실이었습니다(사도 16,11-15).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 일행과 관련하여 필리피에서 있었던 또 다른 일을 소개합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사건입니다(사도 16,16-40). 기승전결이 뚜렷한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기: 바오로 일행이 유다인들의 기도처에 가다가 점을 잘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는 점 귀신 들린 하녀를 만납니다. 하녀가 여러 날을 두고 바오로 일행을 쫓아다니며 ‘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종인데 지금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있다’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언짢아진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점 귀신을 하녀에게서 쫓아냅니다(16,16-18).

 

- 감옥에 갇힌 바오로와 실라(위) 감옥에서 나와 리디아 집에서 형제들을 격려하는 바오로(아래)(BiblePlace.com)

 

 

승: 점 귀신이 하녀에게서 나가는 바람에 돈을 벌 희망이 없어진 하녀의 주인들은 바오로와 실라스를 붙잡아 광장으로 끌고 가 ‘이 유다인들이 소동을 일으키며 로마 시민들이 받아들이기에도 지키기에도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고 있다’라며 고발합니다. 군중도 합세해서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질하게 한 다음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합니다. 두 사람은 심한 매질을 당하고 감옥 깊은 곳에 갇힙니다(16,19-24).

 

전: 자정 무렵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리면서 감옥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립니다. 자다가 깬 간수는 감옥 문들이 다 열린 것을 보고 수인들이 다 도망갔다고 생각해 칼을 빼 자결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오로가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다며 큰 소리로 만류합니다. 간수는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두 사람은 간수와 그 집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간수는 두 사람의 상처를 씻겨주고 그 자리에서 자신과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는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16,25-34).

 

결: 이튿날 행정관들이 두 사람을 풀어주라고 명령하자 바오로가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고 매질하고 가뒀다가 슬그머니 풀어주는 법은 없다’라면서 ‘행정관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내보내라’고 항변합니다. 로마 시민이라는 소리에 불안해진 행정관들은 두 사람에게 와서 사과하고 직접 데리고 나가 도시를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두 사람은 리디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만나 격려하고는 떠납니다(16,35-40).

 

- 필리피 옛 도시 유적지(BiblePlace.com)

 

 

죽음의 길을 가려다 생명의 길로 옮겨간 ‘간수’

 

이 이야기에는 몇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우선, 점 귀신과 돈벌이하는 주인들입니다. 하녀의 주인들에게 돈벌이해 주던 점 귀신은 바오로 일행을 두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있다’라고 제대로 알아봅니다. 대조적으로 점 귀신을 통해 돈벌이하던 주인들은 ‘이 유다인들이 우리 도시에서 소동을 일으키면서 부당한 관습을 퍼뜨리고 있다’라고 고발합니다. 돈벌이를 못 하게 화풀이로 엉뚱한 고발을 한 것입니다. ‘돈’이 문제입니다. 참고로 ‘점 귀신’은 ‘피톤의 영’을 번역한 것입니다. 피톤은 그리스 신화에서 가이아 여신의 신전에서 신탁(神託)을 관장하던 큰 용 또는 뱀입니다. 그 신전이 ‘델포이의 신탁’으로 널리 알려진 델포이(라틴어 델피)의 신전입니다.

 

다음으로 행정관들의 태도입니다. 행정관들은 고발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고발자들과 군중에 휩쓸려 바오로와 실라스를 부당하게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바오로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사과하고 도시를 떠나달라고 요청하지요. 당시 로마 시민에게는 법으로 매질이 금지돼 있었는데 유다인이라는 고발자들의 말만 들었다가 낭패를 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간수입니다. 간수는 수인들이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다가 바오로의 만류로 목숨을 건집니다. 그뿐 아니라 구원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자녀가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온 집안과 함께 맛봅니다. 간수는 죽음의 길을 가려다 생명의 길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에는 복음의 일꾼들인 바오로와 실라스가 있었습니다.

 

- 필리피의 광장 옆으로 나 있는 로마 시대 비아 에냐티아(BiblePlace.com)

 

 

마케도니아의 첫 선교지에서 고발과 체포와 매질과 투옥을 당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해, 한 집안 전체가 신자가 되게 한 일은 바오로 자신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우리는 전에 필리피에서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했다”(1테살 2, 2)라고 쓰는데, 바로 이 일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바오로의 선교 활동에 힘입어 마케도니아의 첫 교회가 된 필리피 교회는 이후 바오로의 후원자가 되어 지원합니다. 바오로는 코린도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필요한 것을 채워 주었다”(2코린 11,9)라고 밝히는데 이들이 필리피 교회의 신자들이었습니다. 나아가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도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필리 4,10-18 참조).

 

 

바오로 사도 당시의 모습은 땅속에 묻혔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마케도니아 최대의 도시로 한때는 네아폴리스까지 편입시킬 정도로 융성했던 로마인들의 도시 필리피는 잦은 지진으로 타격을 받은 데다가 슬라브인들이 유입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16세기에 이르면 불과 대여섯 가구만이 사는 초라한 마을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하지요. 오늘날은 유적만 남아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을 맞고 있습니다.

 

- 바오로가 갇혔다고 전해지는 감옥(좌) ‘바오로의 감옥’이라고 적힌 팻말(우)(BiblePlace.com)

 

 

유적들 가운데는 기원후 400년쯤에 건립된 대성당과 주교관도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유적 가운데 하나인 이 대성당은 바오로 사도에게 봉헌한 성당이었습니다. 5세기와 6세기에 건립된 또 다른 성당 유적들도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6세기에 이르면 대성당 외에 적어도 4개의 성당이 필리피에 있었다고 합니다.

 

필리피 유적지에는 바오로 사도가 갇혔던 감옥이라고 전해지는 곳이 두 곳 있습니다. 한 군데는 ‘바오로 사도의 감옥으로 전해지는 곳’이라는 팻말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 아래로 바오로 사도가 걸었을 로마 제국 간선도로 ‘비아 에냐티아’(Via Egnatia)가 길게 뻗어 있고 길과 나란히 큰 광장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 이후에 새롭게 조성된 광장이지만, 바오로와 실라스가 고발과 모욕과 매질을 당하던 모습을 그려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광장 건너편에 대성당의 유적이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 당시의 모습은 대부분 땅속에 묻혔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후대에 조성된 도시 유적만 남았지만, 필리피는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운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더듬고 감회에 젖어볼 수 있는 틀림없는 성경의 도시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7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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