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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시편 톺아보기: 순례시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6-14 조회수2,230 추천수0

[시편 톺아보기] 순례시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걀의 부화율과 음악과의 관계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양계장에서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게 되면서 닭의 음악취향에 대한 연구도 뒤따랐습니다. 닭에 따라서, 또 국가별 닭에 따라 음악에 대한 취향은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양계장의 닭이 팝 음악은 즐거워하는 반면 바이올린 연주곡과 헤비메탈 음악은 싫어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닭의 달걀 생산량이 높아진 덕분에 젖소마저 모차르트와 베토벤 음악의 청취자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음악의 영향력이 닭과 소에게만 미치겠습니까? 자장가나 응원가가 신체 활동에, 또 듣는 이의 감정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노래를 유난히 좋아하여 일터에서도 노래와 함께하였습니다. 보리타작하면서, 모심기하면서 노동요를 불렀고 노를 저으면서 뱃노래를 불렀습니다. 일의 지루함을 잊고 피로를 덜고 동작을 통일시켜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노래는 노동 능률을 높이는데도 그만이었던 것입니다. 노래는 생활의 고단함을 토닥이는 삶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노동과 예술의 최초의 접점이 음악, 노래였다고도 합니다.

 

성경에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알려진 노래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일명 ‘순례시편’으로 분류되는 시편입니다. 유다인들은 일 년에 세 번 자신들의 큰 축제일(유월절, 초막절, 오순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습니다. 성전에서 또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면서 그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데 이 찬미의 노래를 ‘순례시편’이라 부릅니다. ‘시편’에는 같은 내용의 노래들을 한곳에 모아둔 모음집이 있는데 ‘성전 순례시편들’, ‘알렐루야 시편들’이 그러합니다.

 

‘순례시편’은 열다섯 개의 시편(시편 120-134편)이 묶여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열다섯 개의 시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중 열 편은 저자가 익명이고 네 편은 다윗의 작품이며 한 편은 솔로몬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순례시편’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해서 부르는 노래뿐만 아니라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순례의 여정 중에 부르는 노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례의 목적지는 당연히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시는 장소, 곧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러나 순례는 목적지의 도착에만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가는 모든 도정(道程)도 ‘순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는 여정 한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체험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와 섭리하심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열다섯 개의 순례시편이 시편 127편을 기점으로 앞뒤 일곱 편씩 나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중심이 되는 시편 127편의 주제가 ‘헛됨’이라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일찍 일어남도

늦게 자리에 듦도

고난의 빵을 먹음도

너희에게 헛되리라.…

 

이 127편은 교훈을 주는 지혜시편으로서 ‘하느님 없는 인간의 모든 수고의 덧없음’을 깨우쳐줍니다. 명쾌한 교훈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노고는 헛수고이며 물거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의지할 것을 명심하도록 조목조목 일러줍니다. 이는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신앙고백으로서 일상에서 이룩한 모든 업적과 축복의 실상은 ‘우리의 수고’가 아닌 ‘하느님의 수고’였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순례 시편집’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첫 번째 순례시편과 마지막 순례시편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첫 순례시편인 120편에서는 성지순례를 앞둔 순례자가 자신의 이웃들에게서 받은 상처 가득한 삶의 처연한 심정을 하소연합니다. 순례를 떠나기 전, 이웃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지쳤고 상처받은 순례자가 짓눌린 삶의 고단함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례시편 133편에서는 순례를 마친 순례자가 성전을 바라보며 “얼마나 좋고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거짓과 속임수, 평화를 미워하는 그들로 인해 생긴 생채기로 눈물 가득했던 일상을 살던 사람이, 순례의 마지막에 형제들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와 행복을 발견하고 주님을 찬미(134편)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놀라운 심적 변화가 일어난 변곡점은 분명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난 하느님의 깊은 현존 체험일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걷는 순례자입니다. 순례자는 제 자리에 안주하며 정지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를 향해 거듭거듭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찔린 가시에 아프기도 하고 생채기도 나지만, 삶의 모퉁이마다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보호와 놀라운 섭리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문득문득 하느님의 현존을 마주할 희망 때문에, 삶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의 마음과 지친 발걸음이 막 새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순례는 방랑이 아니라 거룩함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월간빛, 2022년 6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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