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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이야기: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19 조회수2,752 추천수0

[성경 이야기]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

 

 

성경 곳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하느님의 구원 도구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민족의 어머니 하와, 레베카, 레아와 라헬, 모세의 어머니와 그의 누이 미르암, 모세의 탄생과 더불어 언급되는 산파들, 파라오의 딸, 이방인으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여 자신과 가족을 구원한 라합,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 민족 살리기에 나선 유딧과 에스테르 왕비, 그리고 예수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눈물의 여인들과 부활의 증인이 된 여인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여인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성경에서 유난히 여성들이 많이 언급되는 책은 단연 판관기입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책임지는 지혜로운 칼렙의 딸 ‘악사’(1,13-15)로부터 시작하여, 여성 판관 ‘드보라’(4-5장), 시스라를 죽인 헤베르의 아내 ‘야엘’(4,18-22),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시스라의 어머니’(5,28), 아비멜텍을 죽인 테베츠의 ‘익명의 여인’(9,53-54), 아버지의 서원으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입다의 딸’(11,34-40), ‘마노아의 아내’로 표현된 삼손의 어머니, 삼손을 유혹한 ‘들릴라’, 은 우상을 만든 ‘미카의 어머니’(17,1-4) 그리고 남편 대신 잔혹하게 죽은 비극의 여인인 ‘어떤 레위인의 아내’(19,24-26) 등 상당수의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판관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당대 사회가 여성에 대해 이중 잣대를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부장적 질서의 희생양이 되는 수동성이 많이 강조된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가부장적 배경에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온 여인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암흑의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며 시대의 영웅으로 거듭난 판관 ‘드보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우선 드보라를 라피돗의 아내로 소개합니다. 남편 라피돗은 ‘횃불’이라는 의미이고 드보라의 이름은 ‘꿀벌’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드보라’라는 이름은 ‘말하다’라는 동사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드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엇보다도 먼저 ‘여예언자’로 소개되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판관이었다는 부가적 설명이 덧붙여집니다. 성경은 드보라가 ‘야자나무’, 즉 ‘종려나무’에 앉아서 재판을 했다고 알려줍니다. 종려나무는 사실 이스라엘의 상징이기도 한데 ‘꿀’ 이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러고 보면 ‘꿀벌’인 드보라가 ‘꿀’나무 아래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인 ‘꿀’을 전달한 것입니다.

 

하지만 드보라가 판관으로 있던 시대는 철병거 구백 대를 앞세운 하초르의 왕 ‘야빈’에게 20년 동안이나 압제를 받던 때였습니다. 모두가 좌절하고 도탄에 빠져 지내던 그 때 드보라는 전쟁을 선포하며 총사령관 ‘바락’에게 ‘타보르 산으로 진격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지만 바락은 출정을 주저하며 드보라의 동행을 요구합니다. 막강한 철병거를 보유한 군사력 앞에 망설임과 주저함은 어쩌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이 때문에 바락은 승전의 그 어떤 영광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오히려 영광은 용기있고 대담하게 적장 ‘시스라’를 죽인 적극적인 여인, ‘야엘’에게로 돌려집니다.

 

이 전쟁의 결과를 보면 전쟁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칼날로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셨기 때문입니다. 또 별들이 하늘에서 싸웠다고 하는데, 이것은 폭우가 쏟아졌음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폭우로 인해 바싹 말랐던 키손 강이 범람하며 주변의 땅이 진흙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던 철병거가 진흙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됩니다. 적군의 장수 시스라는 질겁하여 줄행랑을 칩니다. 성경은 무시무시한 철병거가 있음에도 그것을 타고 도주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꽁무니 빠지게 달음질쳐 도망하는 시스라의 비참한 모습을 마음껏 조롱합니다.

 

시스라는 동맹을 맺고 우호적 관계에 있던 헤베르의 집으로 도주합니다. 그런데 집주인은 없고 그의 아내 ‘야엘’이 그를 호의적으로 맞이합니다. 한 나라의 장군, 용맹한 장수가 여성의 천막에 숨어들어 보호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가 가진 모든 권위와 체통이 무너지고 있음을 성경 특유의 익살스러운 풍자로 담아내는 표현인 것이지요.

 

야엘은 피로해진 시스라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물을 청하는 그에게 오히려 수면 촉진제에 가까운 ‘우유’를 대접합니다. 이후 시스라가 깊은 잠에 빠지자 야엘은 천막 말뚝을 가져와 망치로 그의 관자놀이에 들이 박았습니다. 적극적이고 대담한 야엘은 그 어떤 머뭇거림이나 주저함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심하리만큼 무덤덤하게 순차적으로 그 모든 일을 차분히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드보라와 바락이 힘차게 노래합니다.(5장) 마치 모세와 미르암이 홍해를 건넌 후 승 전가를 부른 것처럼 말이지요. 드보라는 모세에 비견되는 인물로 그려지는 듯 보입니다. 드보라의 노랫말이 모세의 승전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지도력으로 억압에서 자유와 해방을 가져온 드보라, 그리하여 그녀는 ‘이스라엘의 어머니’(5,7)로 칭송 받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는 유일하게 드보라에게만 사용되었습니 다.

 

아울러 드보라의 노래에는 전쟁에 동참해 준 지파 사람들에게는 아낌없는 칭찬을, 그렇지 않은 지파 사람들에게는 신랄한 꾸짖음이 담겨 있습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어머니’로서 시련 앞에서 백성을 격려하며 다독이지만 이따금 충고와 따끔한 질책으로 그들의 잘못을 짚어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탁월한 식견을 지닌 지도자로서 나라의 평화를 되찾고 또 지혜로운 훈육자로서 행동의 모범을 통해 백성을 영적 성숙과 성장으로 이끌었던 것 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국모’로 칭송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월간빛, 2021년 10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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