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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신명기계 역사서의 마무리 – 남 유다의 멸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4 조회수7,249 추천수0

[2020 사목교서 ‘성서의 해 II’ 특집] 신명기계 역사서의 마무리 – 남 유다의 멸망

 

 

하느님께서 나탄 예언자를 통해서 다윗 임금에게 전해주었던 약속(2사무 7장)을 기억하시지요?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6). 그렇게 시작되었던 다윗 왕조였습니다. 희망과 꿈을 가득 품고서 시작된 왕조였습니다. 하지만, 다윗 이후 세 번째 임금에 이르러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이 되는 고통을 겪게 되었고, 하느님의 아들로 불려 질 것이라던(참조: 2사무 7,14) 다윗의 후손들은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강대국과 주변국가의 위협 속에서,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힘에 의지하면서 그렇게 주님의 눈에 거스르는 짓을 하였습니다. 또 임금이 앞장서서 하느님을 배척하고, 하느님의 가르침과 계명에 충실하기보다, 이방신들과 우상을 섬겼습니다. 다윗 왕조에는 다윗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임금인 치드키야에 이르기까지 22명의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주님 보시기에 마음에 드는 일을 한 인물은 다윗 왕조의 시작을 알린 다윗 임금과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모두 받고 있는 솔로몬(솔로몬은 성전 건축으로 긍정적 평가가 우세합니다)과 이방신들의 신상으로 가득한 예루살렘 성전을 개혁한 히즈키야와 신명기계 운동의 부흥을 일으킨 요시야 임금, 네 명의 임금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윗 왕조는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보다는 주님 눈에 거스르는 길을 걸었습니다.

 

다윗 왕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열왕기는 거듭 언급하지만,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가를 기준점으로 잘 따르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축복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심판이 내린다는 신학이 담긴 역사서입니다. 그 역사서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 아닌 왕국의 멸망을 담고 있습니다. 열왕기의 마지막인 2열왕 25장은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남유다의 지도자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열왕기가 전해주고자 했던 바는 명확합니다. 유다의 임금들이 하느님의 길을, 주님의 가르침과 계명을 성실하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왕국이 멸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왕국이 멸망했습니다. 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면서 하느님의 지상 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던 다윗 왕조가 무너졌습니다. 아울러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하느님 현존의 공간이었던 성전의 파괴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의 율법에 따르면, 그들이 하느님께 합법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지상의 장소는 오로지 예루살렘 성전뿐이었습니다. 이제 그 성전이 이방 민족에 의해서 파괴되고 무너졌습니다. 단순하게 하나의 건물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잃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는 이러한 멸망의 사건에 대한 책임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히 유다 사회의 지도층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 멸망의 이유는 하느님께서 무능하고 무력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느님만을 믿고 따르지 않고, 하느님이 아닌 이방신들을 섬기면서 하느님을 배신하여 멸망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여호수아기부터 시작하여 남유다 왕국의 멸망을 묘사하는 열왕기 하권에서 마무리됩니다. 주님의 계명과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이들에게는 축복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이 내려진다는 신명기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전개되었던 역사서가 바로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지파들의 연합체에서 왕정국가로 옮겨가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들려주고 있는 신명기계 역사서는 그 중심에 하느님을 향한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그 마지막 자리에는 축복이, 기쁨이,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닌, 주님의 심판과 멸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진리는 비단 신명기계 역사서가 들려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의 발자국, 그것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나요? 우리의 발걸음, 주님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의 만족을 향하고 있는지? 물음 가운데 우리의 삶의 자리를 돌아봅시다.

 

[2019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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