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마태오 복음서 22장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13 조회수3,979 추천수0 신고



2021. 3. 13. 도란도란글방

 

혼인잔치의 비유

 

(마태22:1~14)

예수님께서는 또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오늘 본문을 올바로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이 혼인잔치의 비유가 어디서부터 출발하여 서술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이 혼인잔치의 비유는 21장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이어지고 있는 비유입니다마태복음 21장에는 드디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시작으로성전을 뒤집어엎으시고애꿎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주님의 모습과두 아들의 비유와 패역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22장에서 이어지는 것이 오늘 본문의 혼인잔치의 비유인 것입니다우리는 그러한 내러티브를 통해 마태오가 그 일련의 사건들과 비유들을 통해 일관성 있는 한 가지 메시지를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혼인잔치의 비유를 좀 더 정확하게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21장의 그 사건들과 비유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먼저 간단하게 마태복음 21장의 여러 가지 사건들과 비유들을 개괄적으로 보고 오늘 본문의 비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마태복음 21장을 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간생략~

 

 

(히브1:1-2)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언자들과 아들은 이 세상에 같은 열매를 요구하러 오셨던 것입니다자기부인의 열매십자가라는 열매를 찾으러 오셨던 것입니다그걸 회개라 합니다난 율법과 제사와 행위에 의해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그 자기부인의 행위가 바로 회개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그 자기부인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아담 속의 모든 인간들은 다 죽어야 합니다그러나 하느님의 편애는 거기서도 위력을 발휘합니다하느님은 포도원 울타리 밖으로 버려진 주님을 모퉁이 돌로 만들어 버리십니다그리고는 당신의 편애를 입은 어떤 무리들 속의 그 단단한 인본주의의 그릇을 깨버리시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모퉁이 돌에 붙여서 성전을 지어가십니다그게 구원입니다.

 

(마태21:42-46) 4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고 한 말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잘 들어라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44 (그리고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그 돌 밑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45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46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4절을 보면 예수라는 돌 위에 떨어져 깨어지고 가루가 되는 이가 복이 있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들만이 살 수 있습니다그들만이이 세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세를 얻어 사는 나그네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그 주인이신 하느님이 원하시는 자기부인과 순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태복음 21장 전체는 하느님의 은혜와 인간의 행위하느님이 요구하시는 열매와인간이 업적과 공로로 내어놓는 가짜 열매를 극명하게 대조를 함으로 말미암아 참 성도의 삶에 대해 심도 있게 조명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어지는 비유가 바로 혼인잔치의 비유인 것입니다이 혼인잔치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즉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종결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결의 그림인 것입니다. 왕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그런데 사람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고대시대는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대입니다그래서 유대인들도 하루에 두 끼밖에 못 먹었습니다그러한 때에 동네에 잔치가 벌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아마 그 잔치를 먹기 위해 며칠 전부터 굶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그런데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입니다왜 그 대단한 잔치에로의 초대에 아무도 응하지 않았던 것일까요그들에게는 그 아들의 잔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병행구절인 루가복음 14장에 조금 더 자세하게 그 이유가 나옵니다.

 

(루가14:18~20)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뭐 하느라고 잔치에 못 온 것입니까일상을 챙기느라 잔치에 못 온 것입니다진짜 풍성한 잔치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초청을 받은 자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얼마나 소중하게 챙겼는지가 오늘 본문 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22:6)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아니 안가면 되지 왜 종들은 죽여요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자아 숭배교에 빠진 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 일상이라는 소유에 목숨 바쳐 집착을 합니다인간의 소유는 곧 인격화되어 자기 자신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그 일상을 사랑하는 삶을 포기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아들 혼인잔치에 자신을 얹어버리는 것이 어찌 쉬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회개하라로 아들의 잔치에 초청을 하러 내려간 하느님의 종들이 전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내가 중요하지 남의 아들은 비록 그가 왕자라 할지라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그게 자신의 영광만을 위해 사는 이 세상입니다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예수님께서 노골적으로 이 세상을 향해 예언자 살해자로 일갈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23:34~35) 34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그러면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 저 고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35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부터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자 보세요패역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와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왕과 주인의 명을 받고 말씀을 전달하러 갔던 종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지요그 이야기를 예언자들의 죽음으로 풀어내고 계시단 말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아벨도 예언자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러면 아벨이 죽은 이유를 밝히면 세상이 왜 혼인잔치에 오지 않고 종들을 때려 죽였는지가 밝혀지겠지요카인이 아벨을 왜 죽였습니까자신의 제사를 지키기 위해 죽였습니다카인은 사실 제사를 통하여 신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었습니다신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다가선 것입니다자신의 제사 행위로 신의 사랑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면서 자신의 제사를 기뻐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당연히 질투가 나지요그 제사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그 제사의 주인이 하느님이셨다면 왜 하느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를 질투하겠습니까?

그러한 카인이 자신의 제사 행위를 지켜낼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믿음으로 제사를 드리며공로로서의 제사행위를 부정하는 예언자 아벨을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그래서 아벨이 카인에게 맞아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가능성과 자신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자신의 영광과 가능성을 부인하라고믿음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벨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그게 예언자와 예수를 죽이는 세상의 실체입니다.

그렇다면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초청을 하러 온 종들을 죽인 이유가 뭐라는 것입니까자신들의 일상인간의 가능성에서 촉발된 자신들의 행위를 모두 부인하고 아들의 혼인잔치에 가서 아들의 영광만을 찬양해야 하는 그 상황이 싫어서 그 혼인잔치에 초청을 하러 온 이들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쉬운 말로 자신의 일상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힘과 행복과 가치와 인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를 걷어 차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아들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자들을 전부 도륙해 버립니다그게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율법주의이며유대주의인 것이고세속주의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을 혼인잔치에 불러들입니다루가복음 14장으로 가서 그들이 누구인지 보겠습니다.

 

(루가14:21~24)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데려왔습니다그들은 이 세상에서 약한 자무력한 자즉 자신의 힘을 자랑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왕이 그들을 지명하여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그러니까 혼인잔치에 참석하게 되는 사람은 무슨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왕에 의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그런데 그들은 이 세상에서 약한 자부인된 자무력한 자의 삶을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았다고 하자다른 사람들을 강권하여 채우라고 하십니다그렇게 구원은 폭력적으로 강권되는 것입니다절대 자신의 노력과 열심과 자격과 조건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에는 그 잔치에 초대받은 자들이 이렇게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22:10)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악한 자선한 자가 모두 초청을 받습니다그건 이 세상에서의 선함과 악함이 혼인잔치의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오직 강권하여 초청을 받은왕의 편애를 받은 정해진 자들이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구원은 오직 은혜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었습니다예복이라는 것은 잔치 집에서 손님들에게 무상으로 한 벌씩 입혀주는 것입니다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자신의 옷을 벗고 주인이 마련한 그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그게 자신을 초청한 주인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그 예복을 만드는 데에 손님은 그 어떤 기여도 못합니다그냥 주인이 만들어서 선물로 주는 것을 입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그게 은혜입니다그런데 잔치 집에 와서도 여전히 주인의 은혜에 자신을 내 맡기지 못하고 자신의 옷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잔치 집에 들어와 있다고 하는 사람이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이나상태나의지나열심 등에 의해 자신의 구원을 가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구원의 확신이니 뭐니 하면서 마치 검문소의 헌병처럼 사람들을 판단하는 사람들 있지요?

원의 확신은 내가 갖는 주관적인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내 행실이 성실하고 경건할 때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다가도가끔 실패하거나 실수할 때에는 구원을 잃은 사람처럼 낙담하고 하는그런 감정적인 것과자신의 행위의 다소로 구원을 가늠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구원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는 것입니다그게 잔치 집에 들어와 예복을 입지 않고 자기 옷을 입고 있는 사람입니다.

잔치 집에 들어온 사람은 자기 행위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그리고 무상으로 주어진 은혜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구원은 역사적인 것이고 객관적인 사실로 우리를 침노해 들어오는 것입니다하느님이 하신 일이 우리의 구원의 확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우리의 상태나 노력이나 행위가 구원의 확신을 쥐락 펴락해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우리를 위해 나귀를 타시고 당신 자신을 짓밟아 뭉개 버리신 우리의 실로 덕에 우리는 무상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절룸발이가난한 자소경들세리들창녀들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부인당하게 되어 있습니다그리고 그렇게 부인된 자들의 삶 속에 예수가 채워지는 것입니다그게 구원입니다.

우리는 행위의 산율법의 산공로의 산인시온 산을 저주의 바다에 던져버린 사람들입니다그리고 은혜의 옷긍휼의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그게 바로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의 옷이며그게 바로 요한이 말하는 착한 행실입니다우리는 그렇게 포도나무이신 예수에게 접붙여져서 자기부인과 순종의 열매를 맺고 있는 사람인 것이며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라는 반석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진 옛 사람의 죽음을 믿음으로 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우리가 종들을 때려 죽였고우리가 아들을 때려 죽였는데 왕이 우리를 강권하여 잔치 자리에 앉히시고우리에게 무상의 예복을 입혀 버린 것입니다그게 구원입니다자유하세요하느님의 은혜의 지평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십시오.

그 때 우리에게서 진짜 열심과 진짜 성실과 진짜 변화가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왕의 아들의 잔치입니다하느님만 믿어서는 그 잔치에 못 들어간다는 말입니다아들을 알아야 합니다아들은 하느님의 마음이요은혜요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힘과 소유를 이용하기 위해 하느님을 믿었던 바리새인들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멸시하는 것입니다아들의 잔치는 은혜의 잔치입니다그리고 들어오십시오.

 

 참고로 보시고요  전문은 우리들의 묵상에서 보실 수 있으십니다.

행복한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시기를 빕니다. 살롬.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