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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44: 신앙인의 투표 (중)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08 조회수1,996 추천수1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44) 신앙인의 투표 (중)

말뿐인 경제민주화 공약 아닌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119조 2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지난 호에 인간의 존엄함과 인권을 이야기했다. 곧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후보와 그 정당 혹은 정책공약을 평가할 때, 인간의 존엄함과 인권은 훌륭한 판단 기준이 된다. 그래야 '묻지마 투표'라는 부끄러움만은 면할 수 있다. 오늘은 두 번째 기준이라 할 수 있는 공동선과 사회정의를 살펴보자.


공동선 실현과 사회정의

국가의 제1의 임무는 공동선과 사회정의 실현이다. 공동선 원리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 일치 평등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동선이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간추린 사회교리」 164항)를 말한다. 정의는 흔히 계약ㆍ법적ㆍ분배정의로 구분한다.

계약정의는 개인과 개인이 정당하게 맺은 계약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정의는 개인이 집단 혹은 국가에 대해 이행해야 할 의무를 말한다. 이와 반대로 분배정의는 집단 혹은 국가가 개인에게 재화나 기회를 나눠줘야 할 의무를 말한다. 그런데 계약ㆍ법적ㆍ분배정의 실현의 주체가 이를 실천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어느 중소기업 예를 들어보자. 사용자와 경영자가 밤낮으로 기업활동을 했다. 노동자도 힘껏 일했다. 기업은 이윤을 내어 재투자하고 노동자에게 생계임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같은 대불황 시기에 흑자는커녕 적자를 면치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임금을 지불하지 못한 사용자와 경영자는 부도덕하고 불의한 것인가.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는 염치가 없으며 탐욕스러운 것인가. 누구도 이를 부도덕하고 염치없으며, 불의하고 탐욕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 이때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정의, 곧 '사회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

국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제도를 마련하고 재화를 제공해야 한다. 사용자가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가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국가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약육강식의 야만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강자에게는 그 시장이 자유의 공간이겠지만, 약자에게는 사냥감이 되어 쫓기는 사냥터에 불과하다. 소수의 대기업 혹은 재벌은 날로 몸집을 불려 가지만, 중소기업 혹은 자영업은 영양실조와 아사(餓死) 위기에 내몰린 우리의 경제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소수의 독점을 규제할 후보를 찾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사회를 뜨겁게 달구다가 식어버렸다. 처음 소개한 헌법 119조 2항은 공동선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국가(정치)가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는 이른바 경제민주화조항이다.

헌법이 밝히고 있음에도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헌법적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실종되었다는 방증이다. 국가 스스로 헌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경제민주화는커녕 경제독재가 돼버렸다. 그것도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형국이다. 그 지배가 국민경제의 불균형, 소득 불균형,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초래했다. 교회는 이를 '시장의 우상'이라고 부른다.

"국가는 독점 상황이 발전을 지연시키거나 장애를 가져올 때 개입할 권리도 있다. 국가는 발전을 조화시키고 이끌어 나갈 역할 외에 특별한 상황에서는 보충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351항).

이는 처음에 소개한 우리나라 헌법과 닮았다. 우리 현실은 소수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 사이, 산업과 산업 사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 그 밖에 많은 분야에서 불균형이 심화했다. 한쪽의 실질적 종속 상태와 독점으로 치닫고 있다. 시장의 자유를 내세웠지만, 입법부ㆍ행정부ㆍ사법부가 힘 있는 경제 주체 한쪽에 충실히 봉사한 결과는 아닐까.

경제문제에서 국가의 근본적 의무는 경제문제를 조절하려는 적절한 법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실질적 종속 상태로 만들 만큼 강력해지지 않도록 쌍방 간의 일정한 평등을 요구하는 경제 자유의 기본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마침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그 진정성과 실천의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재래시장에 가서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을 펼치겠다고 하면서, 나라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경제지도자 모임에 가서는 잘 봐달라고 하는 태도를 보인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누리방(www.nec.go.kr)을 방문하여 경제관련 정책공약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법적 틀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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