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76) 코프 아드리아티카
어려움 속에서도 나누는 ‘친교 · 사랑’
‘협동조합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협동조합의 천국’이라 불리는 에밀리아-로마냐의 주도(州都) 볼로냐는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살짝 엿보게 해주신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볼로냐 사람들은 생필품을 사러 장보러갈 때 ‘마트’나 ‘마켓’ 간다는 말보다 ‘코프’ 간다는 말을 더 많이 씁니다. ‘코프’라고 불리는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는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지역에서 생산하는 로컬 푸드와 공산품을 주로 판매합니다. 이곳에 진열된 제품의 70% 이상이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코프에서 유통되는 농산물이나 축산물 등은 모두 ‘얼굴이 있는 생산자’가 직접 만들어 공급하는 것들입니다.
코프는 이곳에서 유통되는 상품에 대해서 자체 친환경 인증시스템을 구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신뢰를 판매하는 것입니다. 코프의 제품은 가까운 맛집에서도 세계 4대 와인협동조합 중 하나인 이 지역 ‘리유니트와 치브(Riunite&Civ)’의 와인과 함께 그대로 찾을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지역사회를 위해 이바지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코프 조합원이 아니어도 코프 매장을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볼로냐 주민들은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자기 지역 상품이라는 생각에 25유로의 조합비를 내면서 이용하는 것을 전혀 아깝지 않게 여깁니다. 게다가 조합원은 코프 매장에서뿐만 아니라 코프가 운영하는 서점, 극장, 식당 등에서도 최대 30%까지 할인 혜택을 받습니다. 또한 조합원은 배당금을 일정 금액 적립하면 이자를 받을 수도 있고, 필요할 때 돈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코프는 빈곤 대응 활동의 일환으로 매장 내 상품가치를 잃은 식료품을 폐기처분하는 대신 매년 11월 마지막 토요일 ‘음식 나눔의 날’에 이탈리아 전역에서 노란 봉투를 가진 사람이라면 매장의 물건을 양껏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이색적인 기부행사도 열고 있습니다. 다 쓰고 난 세제 통을 들고 와 매장에 설치돼 있는 자판기 기계에서 용액을 직접 담아가 환경오염을 줄이는 치밀함은 매우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코프에서 발생한 수익 대부분이 지역문화 활동, 올바른 식습관 형성과 소비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지원,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 의료장비 지원과 장학금 지원 사업 등 사회공헌활동과 조합원에 대한 배당금 등으로 지역사회에 고스란히 재투자된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이윤을 올리면서도 지역경제 기여나 지역사회 공헌은커녕 의무 휴일조차 외면하는 우리나라 대형마트들과는 전혀 딴판이어서 사람냄새 풍기는 잔잔한 교훈을 줍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코프와 같이 어려움 속에서도 나눌 줄 아는 친교와 사랑에서 교회의 진정한 섬김과 교류를 보고 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세계적으로도 그 시스템이 잘 알려진 코프는 이페르 코프(Iper Coop) 등을 비롯한 대형 쇼핑몰 16개와 중소형 쇼핑몰 138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코프에는 2010년 현재 105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이 낸 기금이 무려 19억 유로에 달합니다. 2009년 말 매출액만 20억 유로(약 2조9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드러내고 있으니 협동조합의 힘은 놀랍다고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인류가 노력하면 머지않아 정의가 꽃피고 사랑이 둥지를 트는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1월 13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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