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5) 하늘의 창조
‘예수’의 이름에 악을 물리치는 권능이 있어
■ 교황 선출시 나타난 천사구름
지난 3월 13일 로마 바티칸에서 새로운 교황이 탄생된 순간, 미국 플로리다 주 팜비치카운티 웨스트팜비치 상공에 천사 모양의 구름이 나타나 화제가 됐다. 플로리다 지역방송 WPTV의 페이스북에 여러 장 올라온 이 천사구름 사진은 이후 15일 미국 NBC뉴스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됐다. 많은 이들이 이 구름을 ‘신의 계시’라고 믿고 있다.
나 역시 연구소 가족이 보여준 그 사진을 보았다. 첫눈에 ‘미카엘 대천사’란 느낌이 들었다. 평소 미카엘 대천사의 영적 이미지를 익히 상상할 줄 알았던 터라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굳이 ‘냉소적’이고 싶지 않다. 명색이 자격증 있는 학자이지만 나는 평소 “나의 신앙은 단순무식합니다”라고 고백하는 편이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신앙인들은 이따금 뜬금없이 묻는다.
“천사는 과연 실재할까?”
나의 답은 요지부동이다.
“실재한다.”
■ 영계의 창조
성경의 첫마디는 ‘하늘과 땅’의 창조에 대해 언급한다. ‘하늘과 땅’이라는 표현은 존재하는 모든 것, 곧 피조물 전체를 의미한다. 여기서 ‘하늘’은 영적 존재들이 모인 영계, ‘땅’은 물질적 존재들로 구성된 인간계를 뜻한다.
하느님께서는 영계(靈界), 곧 먼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천사들의 존재를 믿는다. 성경은 ‘하늘’에 보이지 않는 피조계(被造係)가 있음을 증언한다. 다음은 천사들(세라핌, 게루핌, 대천사들, 9품 천사들)에 대한 몇 가지 내용이다.
첫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천사’가 본성으로서는 영(靈)이고 직무로서 천사 곧 ‘하느님의 사자(使者)’라고 가르친다. 존재로서는 영이고, 활동으로는 천사라는 것이다.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 천사들은 말뜻 그대로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며 시중꾼으로서 활동한다. 그들은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힘센 용사들”(시편 103,20)이다.
둘째, 각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다.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도 천사가 딸려 있음을 성경은 말한다.
우선, 길을 인도하고 돌보는 존재로서 사람과 동행하는 천사가 있다고 말한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11-12).
다음으로, 각자에게 배속된 천사들이 있음을 언급한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그리고 사람을 섬기도록 파견된 일꾼들이 있음을 언급한다.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히브 1,14)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길손을 융숭히 대접하다가 그들이 다름 아닌 야훼께서 보낸 ‘세 천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축복을 누렸고(창세 18장 참조), 이사야 예언자는 천상 궁중에서 천사들이 찬송하는 소리를 들었고(이사 6장 참조), 토빗은 라파엘 대천사를 통해 눈을 뜨는 기적의 축복을 누렸고(토빗 11,4-13 참조), 다니엘은 가브리엘 대천사를 통해 기도 응답 소식을 전달받았다(다니 8,17 참조).
또한 교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천사들을 눈으로 보는 은총을 누린 성인들의 증언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이는 착시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가톨릭교회의 전통은 증언한다.
■ 골치 아픈 문제
어려운 문제는 사탄, 소위 ‘마귀’의 존재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는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리스어로 이 ‘악’(惡)은 중성 명사로 쓰일 때는 추상적인 ‘악’을, 남성 명사로 쓰일 때는 ‘악마’를 의미한다고 한다. 교회의 전통은 ‘악’이 아니라 ‘악마’에 무게를 둔 해석을 하고 있다. 곧 하나의 위격(位格, 라: persona)을 지닌 사탄 또는 악마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하느님은 선하시고, 본래 그 창조는 선했다. 하느님은 악의 창시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왔을까? “마귀와 악신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선한 본질로 창조되었지만 자기들의 탓으로 악하게 되었다”(제 4차 라테란 공의회)는 것이 교회의 공식 입장이다.
그런데, 마귀(그: diabolos)는 세상에 나와 무엇을 할까?
첫째, 마귀는 유혹자다. 마귀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들어가지 못한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들을 지옥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태초부터 하와를 유혹하여 재미를 봤던 “거짓의 아비”(요한 8,44) 사탄은 온갖 감언이설로 인류를 타락시키려 한다. 사람들을 도덕적 불결로 이끌어 더러운 생각을 하게 하고, 더러운 말과 더러운 행동을 하게 한다. 죄를 짓도록 시험하며(요한 13,2 참조), 진리를 믿지 못하게 유혹한다(2테살 2,9-12 참조).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의 본성을 지녔지만 언제든 마귀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둘째, 마귀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원 행위를 방해한다. 마귀가 누구인가는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함으로 구원 활동을 방해하려 한다(루카 4,1-13 참조).
사탄은 속임수로 교묘하게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방해하려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번번이 그 속셈을 알아채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첫 번째 술책이 ‘속임’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일러주셨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요한 8,44).
셋째,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사탄은 ‘살인자’다(요한 8,44 참조). 사탄은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에 질병을 가져온다(루카 13,11 참조). 욥기 1장에서 사탄은 타락시킬 사람을 찾으러 “땅을 여기저기”(욥 1,7 2,2) 자유롭게 다닌다고 호언장담한다. 훗날 사도 베드로는 욥기에서 이 이미지를 골라내어 이렇게 경고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8).
넷째, 마귀는 세상의 권세와 암흑세계를 배후 조종한다. 겉으로 나타나기는 사람들끼리의 불목이요 지역간 민족간 갈등이지만, 그 배후에는 악신과 악령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에페 6,12).
그러나, 이렇다고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은 금물이다. 마귀 곧 사탄의 힘은 무한하지 않다. 언젠가 끝이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구마 행위와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사탄의 나라가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는 궁극적인 승리를 준엄하게 선언하셨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이 선언을 하셨을 때 이미 싸움은 끝났다. 다만 뒷수습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요한 묵시록 20장 10절을 찾아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들을 속이던 악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는데,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이미 들어가 있는 그곳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묵시 20,10).
누구든지 예수님께 의지하면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 그분에게는 이 세상 모든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힘이 있으시다. 유혹의 때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자. ‘나자렛 예수’의 이름에는 악을 물리치는 권능이 있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4월 14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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