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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25: 강생의 신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20 조회수2,787 추천수0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25)


29. 강생의 신비

1)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우리는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하고 고백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456항).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핵심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강생의 신비입니다.

단순히 “하느님을 믿는다”는 말로는 우리의 믿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들도 하느님을 믿으니까요. 인간을 사랑하시고 도와주시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신들이 인간을 돕기 위해서 심부름꾼을 보내거나 자신이 직접 인간으로 변장해서 지상에 내려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종교들 중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강생하셨다는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징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463항).

2) 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는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굳이 사람이 되실 필요가 있으셨을까요? 다른 종교들처럼 심부름꾼을 보내셔서 인간을 도와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캘커타에 있는 수많은 행려자들이 비참하게 버려져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고귀한 영혼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마더 데레사가 그들에게 가서 “여보세요, 당신이 지닌 품위를 깨닫고 이 비참한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세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너무나 망가진 상태여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는 그들 가운데에 내려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을 먹이고 닦아 주었습니다. 많은 행려자들이 마더 데레사의 품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감사의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짐승처럼 살아 왔지만, 죽을 때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고귀하게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요.

마더 데레사는 행려자들을 돕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해서 기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행려자들에게 음식과 숙소와 의복을 마련해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행려자들에게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는 있었겠지만, 그들에게 하느님 자녀로서의 존엄성을 느끼게 해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행려자들은 마더 데레사가 그들의 처지로 내려와 함께 해 준 것에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자 하느님의 강생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죄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죽음의 길로 돌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늘 위에서 아무리 권고를 하신다고 해도 그 목소리는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 한가운데로 내려 오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랑입니다. 마더 데레사가 행려자들 속으로 내려 간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강생을 통해서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하느님 사랑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강생의 신비는 부활 사건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을 바칠 때마다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부분에서 머리를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3)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

성자 하느님께서는 ‘예수’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들과 똑같이 음식을 잡수시고, 주무시고, 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님’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본성을 지니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다른 심각한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사람인가 아니면 하느님이신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참인간이십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구별되면서 동시에 완전히 하나이시다”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인 것처럼,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참인간이시라는 것도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이처럼 이해 불가능한 문제를 억지로라도 이해해 보자면, 또 다시 예를 들어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1940년대에 프랑스에서는 ‘노동사제 운동’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노동자들이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사제들이 노동자가 되어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노동사제들은 사제의 신분을 숨기고 묵묵히 노동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고자 했습니다. 나중에는 주변 사람들도 그가 사제임을 알게 되었고, 교회가 이처럼 노동자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음을 알고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사제들은 노동자일까요 사제일까요? 둘 다입니다. 사제들이 노동자가 되어야 노동자들의 애환을 깊이 공감하게 되고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제로 남아 있어야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 유일하고도 유례없는 강생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분적으로 하느님이시고 부분적으로 인간이시거나, 하느님과 인간의 불분명한 혼합의 결과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참 하느님으로 계시면서 참사람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시다(가톨릭교회교리서 464항).

[2013년 4월 21일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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