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
30.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리를 공부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과 “예수님은 참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참인간이시다”는 것입니다. 이 교리 내용을 사도신경에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고 표현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하느님이십니다. 동시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셨기에 예수님은 참인간이십니다. 그런데 동정녀 잉태에 관련해서 두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1) 동정녀 잉태는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못하실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과 성전의 증언에 따라 믿을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 몸에 잉태되셨다는 신앙은 비그리스도 신자와 유다인들과 이교인들의 강력한 반대와 비웃음과 몰이해에 부딪혔다. 이 동정 잉태는 이교 신화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 시대의 생각에서 따온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신비들의 내적 연관성” 안에서, 그리고 강생에서 파스카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 안에서 바라보는 신앙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498항).
2) 동정녀 잉태가 반드시 필요했는가?
이것은 보다 수준이 높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사람이 되실 필요성이 있었음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 즉 예수님은 참사람이시면서 동시에 참하느님이셔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참사람으로 태어나시기 위해서는 동정녀 잉태라는 기묘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이루는 평범한 가정 안에서 태어나시는 것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 굳이 이처럼 기묘한 방법을 택하신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자식을 낳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사악도 그랬습니다. 삼손의 어머니나 사무엘 예언자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역시 자식이 없어서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인간의 처지에 대한 상징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결실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돈도 모으고, 명예를 추구하고, 권력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실은 자식입니다. 성경에서 반복되는 불임의 주제는 인간이 인생의 결실을 보고 싶어 하지만, 자신들의 힘으로는 결실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합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의 결실도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결국 우리의 인생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실 때 남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것은 구원이 인간의 힘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위에서 옵니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내 도움은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시편 121,1-2)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1코린 15,47).
동정녀 잉태는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자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보잘것없는 여인들의 전적인 신뢰심을 바탕으로 당신의 구원 의지를 펼쳐 나가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인간의 모든 기대와는 달리 무능하고 약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여인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드보라, 룻, 유딧, 에스테르와 다른 많은 여인들을 선택하셨다. 마리아는 신뢰로 주님께 구원을 바라고 받는 주님의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빼어난 분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489항).
3)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인간의 구원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협력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실 것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안에서 그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남자를 모르면서도 마리아는, 성령의 힘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리라는 잉태 예고를 받았을 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확신하며, “믿음의 순종으로” 응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처럼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에 동의함으로써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다. 마리아는 온전한 마음으로 아무런 죄의 거리낌도 없이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이고, 당신 아드님의 인격과 활동에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쳐,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드님 밑에서 아드님과 함께 구원의 신비에 봉사하였다(가톨릭교회교리서 494항).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너 없이 창조하신 하느님, 너 있시 구원하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인간의 동의가 필요없으셨으나, 인간을 구원하실 때에는 우리의 협력이 필요하시다.”는 뜻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구원의 은총을 온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런 성모님의 완전한 겸손과 믿음이 있었기에 하느님은 사람이 되실 수 있으셨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 구원의 참된 협력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2013년 4월 28일 부활 제5주일(세계 이민의 날)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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