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92) 소비자협동조합 ‘미그로’
스위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기업
오늘날 스위스는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그 부러움의 배경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있겠지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스위스 다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아름다운 삶의 바탕에 협동조합 정신이 스며들어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 형제적 사랑과 나눔을 통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화인을 새긴 사람은 바로 스위스 최대 소비자협동조합인 미그로의 창업자 고틀리프 두트바일러(Gottlieb Duttweiler)입니다.
오늘날의 스위스를 일구는데 누구 못지않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두트바일러는 ‘스위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투표에서 2위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1위에 선정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차치하더라도 3위를 차지한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 4위 교육학자 페스탈로치, 5위인 적십자 창설자 앙리 뒤낭 등 세계적 명성을 떨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제치고 두트바일러가 2위에 오른 것은 협동조합을 통해 스위스 국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선사하여 협동하며 함께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국민들에게 협동조합이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한 축인 동시에 윤리의 근간으로 만든 미그로는 여러 차례 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위스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 가장 인기있는 기업,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도 공인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미그로의 영예로운 지속적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그리스도 정신이 바탕이 된 사랑과 나눔의 있었기 때문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미그로의 실재를 살펴보는 것은 협동조합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위스 취리히 림마트 거리(Limmat strasse)에 있는 미그로 본사 매장 내에서 선보이고 있는 생수, 음료수, 과자, 화장품 등은 대부분 미그로가 직접 만들고 파는 것들입니다. 우리나라 대형마트의 PB(Private Brand, 유통업자 상표) 상품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외주를 주는 게 보통이지만 미그로는 가격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을 맞추기 위해 직접 제조에 나선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그로에서 구입할 수 있는 농산물은 각 지역 미그로 물류센터에 모아져 가까운 매장부터 먼저 배분됩니다. 근교에서 재배하는 품목과 그 지역 소비자가 원하는 품목 위주로 판매가 이뤄집니다. 축산물은 농민이 도살장으로 가축을 보내면 협동조합이 받아서 미그로에 출하하는 방식입니다. 미그로와 관련된 모든 제품의 생산과 유통에는 이처럼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의식이 속속들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그로는 소비자들의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 진출에도 성공하며 협동조합 정신을 널리 확산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소매업 이외에 조합원들을 기반으로 백화점 체인, 의류 매장, 주유소, 은행, 여행, 급식 등 협동조합 정신이 관철될 수 있는 다양한 사업 영역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스위스 최대 주간신문인 ‘위클리 미그로’등 조합원들과 미그로를 묶는 다양한 소통 도구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미그로는 무한경쟁의 사회 구조 속에서 상대적 빈곤계층을 외면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들려줍니다. 만인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경제정의 실현은 그리스도인이 풀어야 할 과제요 숙제일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5월 12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