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99) 캐나다 ‘데자르뎅’
협동조합 비영리조직 발전에 큰 기여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 국민의 80% 이상이 그리스도인인 캐나다는 협동조합이 매우 발달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로 인해 주민의 88%가 가톨릭 신자인 퀘벡 주는 협동조합의 색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전체 국민 가운데 반 이상인 1800만 명(53%)이 협동조합에 가입한 캐나다에서도 퀘벡 주는 33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있고, 주 인구의 70%가 1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해 있을 정도로 협동조합이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협동조합과 주민들의 삶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캐나다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신용협동조합인 데자르댕(Desjardins)은 퀘벡 주 주민들의 사랑과 자부심이 밴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자르댕의 역사는 캐나다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1867년 ‘영국령 북아메리카 조례(The British North America Act:BNA ACT)’에 따라 ‘캐나다자치령’이 된 오늘날의 캐나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영토에 비해 혹독한 기후와 적은 인구로 인해 국가로서 성장 발전해나가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서 캐나다로서는 영국으로부터 외교 자주권을 찾는 일과 함께 인구증가책이 중요한 사회적 현안이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도 이민을 적극 장려했지만 이민을 왔다가도 조건이 더 나은 미국으로 재이주해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이민을 통한 실질적인 인구 증가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프런티어가 끝났음이 발표되자 캐나다 정부는 세계 각지에서 이민을 적극적으로 모집하는 동시에 밀개량을 비롯한 기술혁신을 통해 한랭기후에서 거주가 가능하게 만들어나갑니다. 그 결과 캐나다는 지속적인 이민을 통해 성장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데자르댕이 움트던 20세기 초,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인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거주지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가까운 금융기관도 없어 신자들은 원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고리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이 필요해 150달러를 빌렸는데, 3000%의 고리대로 인해 5000달러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이들이 적잖게 생겨났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알퐁스와 도리멘 데자르댕 부부는 고리채로 경제적 악순환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위해 유럽의 신용조합 모델을 받아들여 1900년 퀘벡의 레비(Levis) 지역에서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합니다.
데자르댕 부부는 가난한 이들도 쉽게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출자금 5달러를 매주 10센트씩 1년 동안 나눠 낼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데자르댕은 보험, 투자, 컨설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20개 자회사와 422개 지점을 두고 지난 2012년 기준으로 580만 명(퀘벡 인구는 약 770만 명)의 조합원과 4만7000명에 이르는 종사자를 보유하고 자산 1900억 달러(203조 원), 1년 순이익 17억 달러(1조8000억 원)에 달하는 북미 최대의 신용협동조합으로 성장했습니다.
데자르댕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파생상품은 아예 취급하지 않고, 1970년대부터 연대저축기금을 만들어 협동조합과 비영리조직이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등 데자르댕 부부의 사랑의 정신을 묵묵히 실천하며 하느님 나라를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와 기적이 아닐 수 없으며, 이런 모형은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6월 30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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