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66)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해야 할 국가(공권력)의 의무
공생 없이 사람다운 세상 원하는가
지난 5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몇몇 신임 대사들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교황은 부자건 가난하건 똑같이 모두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교황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재촉해야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존중해야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북돋워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약육강식 논리가 사회 불평등 심화한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단순하게 경제적 차원에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오늘날 삶의 모든 분야는 밀접하게 결합ㆍ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경우 정치적으로는 약자일 수밖에 없으며, 문화적으로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교황이 말한 가난한 사람은 '사회적 약자'라고 이해해야 한다.
부자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강자'쯤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그 본성으로 갖고 있는 '사회성'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사회 안에서 약한 처지에 놓여 있으며, 그 원인에는 자신의 탓(무능, 게으름, 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원인이 개인에 있든 사회에 있든 그 많은 '사회적 약자'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근거는 이른바 '사회적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그나마 남아 있는 희망과 믿음이 소멸하고 있다. 아무리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했다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사회에서 사회적 강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믿음 말이다.
우리의 태도를 솔직하게 성찰해야겠다. 약자를 향한 우리 시선에는 사회성이 담겨 있는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보면서 혹시 게으름이나 무능의 당연한 결과라고 보는 것은 아닌가? 혹은 그런 부모에게 태어난 그 자체를 '불운'으로 치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소수자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상을 갖고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소수의 사람을 보면서 혹시 걸러내야 할 불순한 '이물질'쯤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거꾸로 이른바 힘센 사람, 강자를 대할 때는 어떤가? 경쟁력을 갖추고 능력이 출중하므로 당연하며, 혹은 부모를 잘 만난 행운 때문이라 여기며 부러워하지는 않는가? 혹은 그 힘에 편승하기 위해, 혹은 힘 센 이들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충실히 부역하지는 않는가? 그것이 내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자.
우리의 그 같은 이중의 태도, 약자에 대한 냉소와 강자에 대한 선망이 혹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양분이 되지는 않을까? 더 나아가 힘센 사람들이 사실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인 사회 자원을 독점했거나, 정치ㆍ사회 영역에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해서 제도와 법과 질서를 만들고, 그것을 거의 독점적으로 이용해 강자의 자리에 오르거나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럼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 또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
백번 양보해서 사회적 불균형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더라도 상식의 사회는 그 불평등을 개선하려 하지, 심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적 불균형을 개선하려는 일은 당연히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며 의무이겠지만, 사회적 불균형의 세계화 시대에 그 책임과 의무는 무엇보다도 사회와 공권력에 있다. 그 일을 하라고 모든 시민은 권력을 몰아준 것 아닌가!
그런데 만일 정치와 사회가, 그리고 공권력이 불균형을 개선하려 총력을 기울이기보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충실히 봉사한다면 사회가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성장을 위해 자본에는 세금을 낮추고, 노동에는 세금을 높이거나, 보통 사람에게는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를 '페이퍼 컴퍼니'니 '조세회피처'하면서 유전무죄하고, 부채에 허덕이는 서민에게는 무전유죄를 외친다면 말이다. 공정거래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약육강식의 승자독식을 정당화한다면, 공권력(公權力)은 진짜 공권력일까? 특정 계층을 위한 사(私)권력일지도 모른다.
교황의 말을 조금 바꾸면, "국가 공권력은 부자건 가난하건 똑같이 모두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러나 공권력은, 그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이름으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재촉해야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존중해야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북돋워야 할 의무를 가진" 것 아닐까?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른다. 아무리 그래도 동물은 먹을 만큼만 사냥한다. 포식의 서열에서 위계가 올라갈수록 그 개체 수가 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개체 수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는 공생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아무리 사회적 약자라도 함께 사는 사회가 사람이 사는 사회다.
[평화신문, 2013년 7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