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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37: 친교의 교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5 조회수2,729 추천수0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37)


42. 친교의 교회

3년전 주교님께서는 우리 교구의 기본 사목 방향을 소공동체 운동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소공동체 운동이란 무엇일까요? “신자들끼리 알고 지내자, 반모임 잘 하자”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피상적인 이해입니다. 소공동체 운동은 보다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보려는 노력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친교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3가지 차원의 친교가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평신도 그리스도인 19항).

1) 하느님과의 친교

당연한 말이겠지만, 교회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친목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의” 궁전입니다.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해서 하느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분과 밀접한 친교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개인적인 기도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결합됩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4-5).

그런데 현재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이 부족합니다. 친교란 자주 만나고 서로 아껴 주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보다 깊은 친교는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미사 참례와 개인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자신의 소원만을 일방적으로 비는 시간이 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교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소공동체 운동에서는 “복음나누기”를 강조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그 말씀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훈련을 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될 때 교회는 보다 깊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 신자들 상호간의 친교

순교자 황일광(시몬, 1757-1801)은 백정 출신이었습니다. 신자들은 그의 신분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으로 형제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양반집 방에까지 초대받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적 대접을 받은 그는, 자신에게 천국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존중해 주는 거기에 바로 지상 천국이 있고, 또 하나는 후세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친교를 원합니다. 그들의 친교는 “끼리끼리의 친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순교자 황일광의 예에서 보듯이 “보편적인 친교”를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그 나라는 일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까지 다 포용하는 보편적 친교의 공동체였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의 모습은 일반 사회보다는 분명히 친교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자들끼리 서로 관심을 갖고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끼리끼리의 친교”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공동체 운동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 내 수준에 맞는 사람들과만 사귀는 모임이 아니라, 구역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건강한 이와 아픈 이, 신앙적으로 열심한 이와 냉담한 이, 젊은이와 노인,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함께 모여 신앙을 나누는 보편적 친교의 공동체를 꿈꾸는 것입니다.

또한 친교로서의 교회는 성직자와 신자들 간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 교회에는 “좋은 사제들”(세상적인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께 마음을 집중하고, 신자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열심히 사목하는 사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신자들과의 관계가 일방적이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너를 위해서 희생을 하니까, 너는 내 말에 토 달지 말고 따르기만 해라”는 식의 모습이 사제들과 신자들 간에 너무 많이 보입니다. 이것은 성숙한 친교의 모습이 아닙니다. 사제들이 신자들을 성숙한 자녀로 인정하고, 신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함께 사목을 할 때 진정한 친교의 교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3) 세상과의 친교

예수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선교 활동은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입니다. 그런데 과거 교회는 선교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가진 적이 많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모르는 무지한 자들”, “죄악에 빠져 헤매는 죄인들”, 더 나아가 “신자들이 피해야 할 죄악 덩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는 50년 전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대화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과 친교를 이루는 데서부터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교회는 세상사에 관심을 갖지 않고 교회 내부적인 일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들(인권, 빈곤, 노동, 평화,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세상 사람들과 협력하여 이런 문제들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사목헌장 1항).

소공동체 모임에서는 항상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없는지” 살핍니다. 신자들의 모임이 “우리끼리만 좋은 모임”에서 끝나서는 안되고, 세상 사람들에게로 다가가는 모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자녀들 간에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 이웃 가정들과도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교회가 성부-성자-성령의 친교를 본받아, 친교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21).

[2013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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