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47)
52. 세례성사 I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사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공부했습니다. 오늘부터는 7성사를 하나씩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스도교 입문의 성사들(세례, 견진, 성체)
★ 치유를 위한 성사들(고해, 병자)
★ 신자들의 친교와 사명을 위한 성사들(혼인과 성품)
1) 세례성사의 본질 - 하느님의 은총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물로써 그리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13항).
세례성사에서 핵심적인 예식은 물로 씻는 행위입니다(요즘은 이마에 물을 3번 붓는 방식으로 세례 예식을 거행하지만, 초대 교회에서는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방식으로 행해졌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목욕재계와 같은 “물로 씻는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우리 몸의 더러움을 물로 씻듯이,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이기적이고 욕심에 가득찬 생활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생활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성사는 일반적인 물로 씻는 예식과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물로 씻는 예식은 사람들이 새로운 마음가짐, 새로운 결심을 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지만, 세례성사는 하느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들을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노력으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앞서서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과 제자들도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둘 다 하느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의 삶을 결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세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된다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2) 세례성사의 효과
① 죄의 용서
세례성사는 말 그대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주는 성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받기 전의 모든 잘못을 용서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원죄(原罪)까지도 사라지게 됩니다.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는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 있지 않다. 곧 아담의 죄도, 본죄도, 죄의 가장 중대한 결과인 하느님과의 단절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63항).
그런데 “세례를 받았는데도 생활이 변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에게는 고통, 질병, 죽음 등 죄의 현세적 결과 그리고 연약한 기질과 같은, 인생에 내재한 나약함이 남아 있다. 그리고 교회 전통이 ‘사욕’(邪慾)이라 부르고, 은유적으로는 ‘죄의 불씨’라고 부르는, 죄로 기우는 경향도 그대로 남아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64항).
이렇게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부모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와 좋은 부모를 가진 아이가 있다고 할 때, 두 아이는 겉으로 볼 때 별 차이가 없습니다. 둘 다 병에 걸리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부모를 가진 아이는 그 어려움을 보다 쉽게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들은 하느님의 도우심 안에서 당면한 어려움들을 싸워 나갈 수 있습니다.
② 새 사람이 됨
세례는 모든 죄를 정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신자를 “새 사람”이 되게 하며,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 성령의 성전이 되게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65항).
세례를 받기 전에 우리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하느님과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만 살아왔습니다.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부자 아버지나 높은 지위에 있는 아버지를 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는 고귀한 사람들로 변화된 것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세례성사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슈퍼맨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맺는 여러 가지 관계들 안에서 새로운 모습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지향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한 몸이 됨
죄의 용서와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세례성사의 핵심이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신자는 혼자 고립되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에페 4,25).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고린 12,13).
교회의 일원이 된 세례 받은 사람은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순종하고, 교회 친교 안에서 그들에게 봉사하며,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세례를 받으면 이처럼 책임과 의무가 생기지만, 동시에 세례 받은 사람들은 교회의 품 안에서, 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양육되며 교회의 다른 영적인 도움으로 지원받을 권리도 누린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69항).
[2013년 9월 29일 연중 제26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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