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Q&A
“다섯 번째 계명에서 살인을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컵은 우리가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 물 한잔을 마시는데 최상의 그릇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컵을 그림물감 통이나 고약한 약품을 담는데도 사용합니다. 하지만 오물을 씻어낼 수 있는 물이 있으면 더러워진 컵은 언제나 깨끗한 컵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컵을 깨뜨려 버린다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집니다. 부서진 컵은 더 이상 컵으로서의 의미가 없듯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인간 존재의 파괴를 뜻합니다. 생명은 부모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전해진 선물입니다. 삶은 이 생명을 살아가는 과정이며 인류의 역사는 생명의 기록입니다. 성경은 생명의 근원에 대해 심오하게 가르쳐줍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가장 낮은 피조물에 불과한 흙덩이가 생명체의 정점인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숨결 덕분입니다. 창조된 인간은 연약함과 위대함을 함께 지닙니다. 인간의 위대한 생명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연결되며 또한 모든 생명의 목적이신 하느님과 끊임없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신성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58항 참조) 이렇게 신성한 인간의 생명은 어떤 이유로든 파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공격입니다. 생명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고의적인 살인은 대죄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권력도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의 형제, 아벨을 죽인 카인의 살인은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인간 안에 자리 잡은 분노와 욕망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피는 생명이 머무르는 곳이며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피를 흘린다는 것은 한 인간이 죽느냐 사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척도와 요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벨의 피를 기억하시고 그 책임을 카인에게 묻습니다. 우리 모두는 형제를 지키는 사람이지 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의 내면에서 움터 나오는 분노와 증오가 살인의 동기입니다. 우리가 과연 살인이란 악을 근절할 길은 없습니까?
살인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야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상기시키시며 여기에 분노와 증오와 복수하는 일까지 금지하십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62항) 분노와 증오는 이해와 사랑을 소멸시켜 이기심의 싹을 틔웁니다.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이기심의 시작이며, 그것은 모든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무너진 관계는 단절과 불신을 키우고, 이기심을 더욱더 증폭시켜, 최악의 경우에 개인 사이에는 살인을,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전쟁을 초래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범죄 중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죄입니다. 전쟁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국가에는 군인이 있듯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교회에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생명의 나라이기에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계명은 이웃사랑의 계명 가운데 핵심이고, 인간이 넘어서지 말아야 할 한계선이며, 인간 존엄성의 뿌리입니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
※ 참고 : 「가톨릭교회교리서」 2258-2317항 (사목국 연구실)
[2013년 10월 6일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서울주보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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