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Q&A
“‘일괄 사죄’는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 더 합리적인 고해성사가 아닌가요?”
대림절이 다가옵니다. 대림절은 성탄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대축제이며, 뒤이어 오는 새해의 희망을 키워가는 행복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는 한 가지 마음의 짐을 가슴에 담고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성탄 판공, 고해성사가 그 부담입니다.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용서 은총을 전해주는 큰 선물입니다. 하지만 죄를 고백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저합니다. 감추고 싶은 자신의 잘못과 죄를 낱낱이 고백하려면 수치심과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고백을 피해 가거나 부담이 조금 덜한 쉬운 방법을 찾습니다. 가끔 주위에서 ‘일괄 사죄’라는 공동체 예식을 볼 수 있습니다. ‘일괄 사죄’는 개별적 고백 없이 사제가 공동체를 대상으로 일괄적으로 사죄경을 외우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일괄 사죄’를 오직 두 가지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합니다. 하나는 전쟁이나 배가 침몰하는 상황처럼 “죽음의 위험이 임박하여 한 사제나 여러 사제가 고백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백을 들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을 경우”(「가톨릭교회교리서」 1483항)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참회자들의 수는 너무 많고 고해사제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하여 참회자들이 자기들의 탓 없이 고해성사나 영성체를 오랫동안 하지 못하게 될 처지에서는 ‘일괄 사죄’가 허용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 ‘일괄 사죄’가 베풀어질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주교가 판단하며, 큰 축제나 순례 때 고해사제에 비해 참회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일괄 사죄’가 베풀어질 수 없습니다.(「교회법」 961조 참조)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부활, 성탄 판공이 일괄 사죄의 이유에 해당되는 상황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일괄 사죄’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일괄 사죄’가 고백의 부담을 피하고 죄의 용서를 쉽게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유혹입니다. 환자의 수가 많다고 똑같은 처방을 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가 아프며, 어떤 사람은 허리가 아픕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호흡이 곤란해 금방이라도 질식할 위험에 처한 환자일 수도 있습니다. 환자에 대한 의사의 정확한 진단은 분명한 처방을 내려주며, 그 처방은 치유의 기쁨을 약속합니다. 진실하면서도 개별적인 죄의 고백은 그만큼 영혼의 빠르고 건강한 치유로 이어집니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환자 치유의 방식이듯이 “개별 고백은 하느님에 대한 화해와 교회에 대한 화해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형식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84항)
주님께서 걸으신 골고타 언덕을 오르지 않고서 부활의 기쁨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죄 고백에 따른 부담을 기꺼이 감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부담은 보다 더 큰 것, 곧 죄의 용서를 통해 내적인 자유와 기쁨을 가져오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요한 16,21) 두려운 진통의 시간 다음에는 새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이 오듯이, 고해성사에서 죄 고백의 두려움을 넘어서면 죄에서의 해방과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향해 발길을 돌린 탕자의 용기는 자유의 시발점이고 하느님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 참고 : 「가톨릭교회교리서」 1461-1484항(사목국 연구실)
[2013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서울주보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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