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63)
68. 첫째 계명
너의 하느님은 나 주님이다. 바로 내가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탈출 20,2-5).
1) 첫째 계명의 중요성
유교 사회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고, 기르셨기에 마땅히 효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님께 대한 효도의 마음이 제대로 갖춰져야만 다른 덕목들도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 가장 중요합니다(그래서 성녀 이순이 누갈다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을 大孝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천주를 저는 믿나이다’라고 하는 이 신앙의 첫 언명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 신경의 모든 구절은 이 첫 구절에 종속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99항). 그러므로 “하느님을 흠숭하라”는 첫째 계명은 이 근본 믿음에 대한 당연한 응답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정립되지 않으면 그밖의 모든 신앙 내용이 흔들리듯이, 하느님을 흠숭하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방향을 잃게 되고, 가족에 대한 사랑, 이웃에 사랑도 제대로 실천될 수 없습니다.
2) 첫째 계명의 실천
① 흠숭
부모에게 효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좋은 음식을 드리고….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입니다. 부모님이 내 존재의 근거이심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흠숭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첫째 계명은 강압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베푸신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당연히 갖게 되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흠숭은 마리아께서 노래하셨듯이, 하느님께서 큰 일을 하셨고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시다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면서, 하느님을 찬미 찬송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폐쇄하는 데에서, 죄의 속박에서, 세상의 우상 숭배에서 해방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97항).
② 기도
부부가 대화를 별로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대화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흠숭도 기도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첫째 계명이 명하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행위는 기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드높이는 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 흠숭의 표현이다. 찬미와 감사의 기도, 전구와 청원의 기도가 바로 그러하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98항).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일방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소연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도의 본질은 상호적인 대화이고, 그러므로 하느님 흠숭을 위한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소원은 아들이 참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인데, 아들은 어머니에게 용돈을 더 많이 드리는 것으로만 효도를 다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된 효도가 될 수 없듯이,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흠숭은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③ 희생 제사
성부 하느님께 최고로 마음에 드는 흠숭을 드린 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성자 예수 스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성부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셨고, 급기야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효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봉헌을 100% 본받는 것은 어렵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와 우리의 삶을 일치시켜는 방향으로 살아가려고 항상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흠숭과 감사, 탄원과 일치의 표징인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거룩한 친교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여 행하고 또 그럼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참다운 제사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99항).
[2014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 의정부주보 5-6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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