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69)
74. 다섯째 계명 (2)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 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1-22).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다섯째 계명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지킬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는 죄뿐만 아니라, 타인을 죽음으로 이끄는 모든 행위에 거슬러 살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1) 위험에 놓인 사람을 도울 의무
다섯째 계명은 고의적인 살인의 죄뿐만 아니라, 위험에 놓인 사람에게 도움을 거절하는 것을 금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음식이 마구 버려지고 있습니다.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된 상황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자살자들의 개인적인 잘못으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아파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섯째 계명을 올바로 지킨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인간 사회가 기근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 데 대하여 구제책을 세우고자 노력하지 않고 묵인하는 것은 파렴치한 불의이며 중대한 죄이다. 폭리를 추구하며 탐욕스러운 행위로 인류 형제의 굶주림과 죽음을 유발시키는 상인들은 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며, 그 책임은 그들에게 돌아간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69항).
2) 영적인 죽음과 악한 표양
다섯째 계명은 영적인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생명이 소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많은 이들이 육체적 건강에만 몰두하고, 과소비와 탐식, 쾌락에 마음을 빼앗기고 삽니다. 이런 인생 태도는 영적인 죽음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세상의 가치를 뛰어 넘는 영적인 가치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며, 또 이웃에게 영적인 가치를 증언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세상에 영적 생명을 증거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악한 표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악한 표양(스캔들)은 악을 저지르도록 타인을 이끄는 태도나 행위입니다. 악한 표양을 보이는 사람은 이웃을 영적 죽음으로 이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남들에게 직접적으로 죄를 짓도록 사주하지 않더라도, 신앙인들이 생활 안에서 세상의 가치에만 몰두해서 산다면 “악한 표양”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만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신자들, 편안함과 대접받음만 생각하는 성직자들을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들은 영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을 것이고, 회개의 기회를 얻을 수 없으므로, 결국 영적 죽음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믿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마태 18,6).
악한 표양은 법이나 제도, 유행이나 여론 등으로 유발될 수 있습니다.
부정 행위를 조장하는 규칙을 정하는 기업주들이나,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격분하게 하는” 교사들, 그리고 여론을 조작하여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죄를 짓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86항).
3) 평화의 일꾼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살인하지 마라.”(마태 5,21)는 계명을 상기시키시며, 여기에 분노와 증오와 복수하는 일까지 금지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를 사랑할 것을 당신 제자들에게 요구하십니다. 인간 관계는 시한 폭탄과도 같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분노와 복수심이 끓고 있어서 언제든지 폭력으로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섯 째 계명을 온전히 실천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우리 내면에 있는 분노와 복수심을 버리고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신뢰심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9).
평화를 위한 노력은 국가 간에 더욱 절실히 요청됩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전쟁 준비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를 두려워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군비 경쟁의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전쟁의 원인이 되는 국가 간의 불의한 관계를 개선시키려는 노력과 국가 간의 신뢰심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개인들과 국가들 사이에 만연된 불의와, 경제 사회 분야의 지나친 불공정과 불평등, 시기, 불신과 교만은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하며 전쟁의 원인이 된다. 이런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모든 활동은 평화를 이룩하고 전쟁을 피하는 데에 이바지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317항).
[2014년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의정부주보 6-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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