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40) 물질만능주의의 한 자락, 세월호 참사
사회문화적 요인이 빚어낸 전형적 인재
바로 눈 앞에서 지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6일 성주간 수요일에 일어난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를 눈물로 지켜보았습니다.
살려달라는 아우성은 고사하고 외마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아버린 안타까운 생명들이 있습니다. 몇 날 며칠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울부짖음이 하느님 아버지께도 가닿았을까요. 주님께 매달릴수록 원망하는 마음이 수북이 쌓이는 오늘의 현실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참사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이번 사고를 두고 문제의 원인을 되짚는 많은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슬픔과 분노는 물론 자기혐오에 가까운 감정들까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주가 어떤 종착지에 다다를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전형적인 인재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비등합니다. 국민들의 안녕과 행복보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경제모델, ‘빨리빨리’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문화 등이 세월호에 탄 꽃보다 아름다운 18세의 학생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며 사회문화적 요인을 참사의 배경으로 지목하는 시각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비슷한 또다른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며 사회의 구조적 악을 수술하라고 소리 높여 외칩니다.
이런 분석들은 일면 일리가 있는 소리지만 성장우선주의와 안전과 도덕 불감증 등 고질적인 사회·문화적인 요인들로만 문제를 한정해서는 정확한 해법을 찾아내기 힘들 것입니다. 매번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이 이번에도 이어진다면 300명이 넘는 이들의 희생에 누구보다 아파하실 분은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신 주님이실 것입니다. 오히려 이 같은 사회·문화적인 분석이나 판단은 결국 자기혐오와 타성만을 낳아 문제 해결에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말로는 표현하기조차 힘든 고통의 현장에 함께하며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표징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희생된 이들을 위해 함께 통곡하며 울어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아픔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주님께 지혜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번 참사의 희생자이자 동시에 공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번 참사의 가장 저변에는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인명 경시 풍조와 배금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세월호에 탄 이들을 한 형제로 여겨 끝까지 아픔에 함께하고자 한 이가 얼마나 될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형제애에 대한 인식이 밑바탕에 깔리지 않는 한 평화와 사회정의는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결국 세월호 참사로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불의와 부조리는 형제애가 희박해져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와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재물에 대한 욕망이나 권력에 대한 갈증에 현혹되어 형제를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4년 5월 4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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