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2)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노동은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한국 경제가 이전보다 더 발전했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매일 꼭두새벽부터 지옥철과 광역버스에 지친 몸을 싣는다. 사실 한 가정의 가장이 혼자서 벌어 온 가족을 부양한다는 말은 이미 먼 과거의 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맞벌이하지 않으면 가정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으며, 뼈 빠지게 둘이 벌어도 자신들의 힘으로는 집 한 채를 마련하기에도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노동은 삶을 위한 투쟁인가?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살아가는 나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는 멀리 동떨어져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하나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된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의 한 부류로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육체적으로 너무나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들곤 한다. 이따금 만나는 신자들은 이런 내 모습에 막연한 동경을 지니고 이렇게 농담하곤 한다. “신부님은 참 좋겠어요. 아이들 학자금 걱정이나, 공과금 걱정도 없고. 내 집 마련을 위해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니까요!” 어찌 보면 이런 사제들의 외형적 모습이 신자들에게도 더 편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만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더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나 역시 사제직을 준비하면서 이른바 노동체험(?)이란 것을 한 적이 있었다. 신학생들은 사제품을 받기 전에 다양한 사목 체험을 하게 되는데 그런 교육의 목적으로 나는 노동체험을 할 수 있었다. 군 제대 후 10개월 동안 복학을 기다리면서 모라토리움(현장실습 기간)을 보냈는데, 당시 성소국장 신부님께서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로 간호보조원 일을 하도록 추천하셨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하는 일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나의 이런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한 주요 업무는 대학병원에서 이른바 ‘오더리’라고 하는 간호보조원 일이었다.
간호보조원의 주요 업무는 간호사들의 일을 도와 병원 내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술실에 배정되었는데, 수술실을 청소하거나 피 묻은 의사들의 슬리퍼를 씻는 일, 의사들의 음료수를 냉장고에 채워 넣는 일, 수술 후 환자들을 병실로 옮기는 일, 정형외과 환자들의 수술 준비를 돕는 일 등 허드렛일이 대부분이었다.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간호보조원은 비정규직 노동자였는데, 열악한 임금과 근무 조건으로 인해 오랜 기간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록 자신의 처지가 어렵고 힘들지만,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고된 노동의 삶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약 7개월 동안 수술 방에서 일했던 이 시절에 나는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우선 신학생 신분은 감추기로 했다. 간호과장 수녀님과 수술실 담당 수녀님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나를 단지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학생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생각했다. 이러한 신분 때문인지 사람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도 경험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내기 위해 어떻게 애쓰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당한 일에 정당한 대가를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노동을 하도록 허락하신다. 이러한 노동은 인간의 고유한 임무로서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명령하신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74항 참조) 따라서 노동의 가치는 하는 업무에 따라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서는 노동을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일이 비록 사회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서 어렵고 힘들게 일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수행하는 모든 노동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인간은 일하라는 부름을 하느님에게서 받았으며, 이 노동은 인간 그 자체를 최종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노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74항 참조)
일의 종류나 신분에 따라 차별하고 천대하는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라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노동은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것으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갖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신이 한 일에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노동의 천부성에서 비롯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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