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58) 십계명 : 아홉째 계명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
세례 때 받은 하느님 은총으로 육체 탐욕이나 부당한 욕망에서 벗어나야
요한 사도는 사욕(邪慾) 또는 탐욕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육체의 탐욕, 눈의 탐욕 그리고 재물에 대한 탐욕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아홉째 계명은 육체의 탐욕을 금하고 열째 계명은 남의 재물을 탐내는 것을 금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아홉째 계명에 대해 살펴봅니다(2514~2533항).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뤄진 복합적 존재이기에, 인간 안에는 이미 어떤 긴장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사이에 일종의 싸움이 벌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싸움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영적 투쟁의 일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신 자체를 멸시하거나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는 영혼과 함께 인간 본성과 주체인 인격을 구성하는 데에 절대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피하거나 거부해야 할 것은 육체가 아니라 악습과 악덕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렇게 밝힙니다. “덕은 구원을 위한 성령의 활동에 순종한 결과이며 악덕은 이 활동에 반항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 55항).
마음의 정화(2517~2519항)
아홉째 계명은 마음의 정화와 절제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마음은 도덕적 인격의 중심이기에 마음을 올바로 갖는 일, 곧 마음의 정화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란 주로 △사랑 △정결 또는 올바른 성생활 △진리에 대한 사랑과 정통 신앙, 이 세 측면에서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일치시키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마음의 깨끗함과 육체의 깨끗함과 신앙의 순수함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깨끗한 마음은 하느님을 뵙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는 대로 보고, 타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육체와 이웃의 육체를, 곧 인간의 육체를 성령의 성전으로, 또 하느님 아름다움의 표현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정결을 위한 싸움(2520~2527항)
우리는 세례 때에 모든 죄를 정화하는 은총을 얻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 은총에 힘입으면 육체의 탐욕이나 부당한 욕망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은 첫째, 정결의 덕과 결의 은혜를 통해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정결한 사람은 정직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의향의 순수성을 통해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든 일에서 순수한 눈으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기 위해 힘씁니다.
셋째, 외적 및 내적 시선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싸움을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이 싸움은 감수성과 상상력을 통제하고, 하느님 계명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더러운 생각에서 생기는 온갖 굴레를 물리치는 싸움입니다.
넷째, 기도를 통해 싸움을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저 자신의 힘으로 정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도대체 저는 몰랐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정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할 만큼 어리석었습니다…”(「고백록」 중에서).
정결은 정숙을 요구합니다. 정숙함은 절제의 완벽한 구성 요소입니다. 정숙한 사람들의 내밀한 면을 보호해 주며 정결을 지향합니다. 정숙한 사람은 자신의 시선과 품행을 다른 사람의 품위와 또 그 사람과 맺은 관계의 품위에 알맞게 조절합니다. 정숙한 사람들은 부부 관계에서 인내와 절제를 준수합니다. 정숙한 사람은 단정하게 삽니다. 정숙한 사람은 사리를 분명히 합니다.
그리스도교적 정결에는 사회 분위기의 정화가 요구됩니다. 대중 매체들에는 타인을 존중하는 신중한 보도가 요구됩니다. 퇴폐풍조에 대한 관대함은 그 인간 자유에 대한 그릇된 개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자유를 확립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도덕률에 따른 교육, 곧 도덕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진리와 고결한 마음과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존엄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하도록 교육 책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20일, 정리=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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