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7)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 제도
경제 활동, 보편적 인간 삶에 이바지해야
1998년 사제인사 발령 후 유학 준비를 하면서 입학 동기가 신부로 있는 본당에서 지낼 수 있었다. 친한 관계였지만 다른 누군가의 집에 얹혀산다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았고, 함께 식사할 때에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러던 중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나는 문명인이 아닌 원시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그 신부님은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변화에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 신부님은 당시 현대인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로 운전면허증, 인터넷, 신용카드를 꼽았다. 그 필수 품목 가운데 내가 지니고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사제생활에는 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지만, 막상 원시인과 같은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부랴부랴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메일 계정 등을 만들었다. 운전면허증은 시간이 부족해 취득 못 하고 유학을 떠났다.
16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자동차도 있고, 내 방 연구실에는 컴퓨터가 가장 중심에 놓여 있으며, 은행카드도 여러 장 있다. 현대인으로서 꼭 지녀야 할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아직도 원시인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내가 변화하는 속도보다 세상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한국 사회는 세상 어느 곳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속도를 맞춰 살려니 고달플 지경이다.
풍요 속의 빈곤
세상을 변화시키는 문명기기의 발달은 인간의 발전을 충족시키고자 발명된 것들이다. 인간 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하도록 발명된 수많은 제품과 사회 제도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생성, 발전, 변화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문명이 발전하고 세상이 빨라질수록 인간의 삶도 더 쉽고 편안해져야 할 텐데, 실제 삶을 보면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 생활의 편의성과 함께 발생하는 과다한 정보와 업무의 홍수 때문이다.
TV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사달라는 제품 광고가 나오고, 물품을 온라인으로 종일 판매하는 홈쇼핑, 인터넷 쇼핑에서는 소비자의 구매욕을 과도하게 자극한다. 자유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세상은 소비를 점점 더 강조하고 있고, 그러한 소비의 패턴에 몸을 맡긴 일반 사람들은 생필품 마련 보다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충동구매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각 개인은 자신의 소득보다 더 큰 지출을 하게 됐고 개인 부채 비율 역시 이전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
이처럼 소비를 권장하는 한국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고 내다 버리는 현상에서 우리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적 현실을 직면한다.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 땅의 자원은 한정적이고 그 자원을 이용하는 인간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원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부족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물건들이 넘쳐 나고 있다면 그 사회는 분명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선을 위한 자원 활용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경제의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자원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짜임새 있게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 경제 체제 안에서 꼭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교리에서는 이러한 효율성을 자본이나 시장에 그대로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국가, 중재역할을 하는 사회 기구들과 같은 다양한 관련 단체들의 주체적인 책임과 능력에 두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46항 참조).
교회의 사회교리는 우선 시장을 경제 제도의 내부 작용을 통제하는 중요한 도구로 인정하는 한편,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적절한 한계선을 정하고 이를 보장하는 윤리적 목표에 굳게 뿌리박혀 있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349항 참조). 또한, 국가 역시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자유로운 경제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하지만, 동시에 ‘연대성의 원리’에 충실하여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그 자율성에 제한을 둘 것을 제안한다(351항 참조). 다시 말해 시장과 국가가 서로를 보완하여 조화롭게 활동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사회교리는 공공 활동과 비영리 민간 활동을 포함한 중간단체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민사회는 시장과 국가에 대한 협력과 함께 효과적인 보완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공동선 달성에 이바지하고 경제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게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56항 참조).
인간의 모든 경제적 활동이 보편적인 인간 삶과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개선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시장 경제에 대해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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