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 가톨릭교회에는 왜 교황이 있는가? (1)
들어가는 말
가톨릭교회에 교황이 있고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을 존경한다는 사실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듯하다. 가톨릭 신자들은 왜 교황을 보러 바티칸까지 가는가? 교황이 어디를 방문하면 왜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를 맞으러 몰려드는가? 교황이 축복한 묵주는 왜 가톨릭 신자에게 소중한 기념물이 되는가?
이러한 행태는 영웅 숭배나 광신적인 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에게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사도 시대와 현재를 연결하는 가시적인 고리 역할을 한다. 가톨릭의 근원들과 전승들은 그리스도에서 베드로에게로, 그리고 오늘날의 교황에게로 이어지는 권위를 통해서 전해 온다.
가톨릭 신자들의 뜻이나 생각이 교황과 항상 같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 안에는 늘 교황에 대해 가지는 상징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가톨릭교회의 교황 제도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단일한 영적 지도력을 제공하고, 교계적(敎階的)인 조직은 세상에 향한 그리스도의 소명을 수행하기 위한 안전을 담보한다.
교황 제도에 대한 역사적 개관
교황의 권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이해는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사도 베드로에게 특별한 우선권과 지도력이 부여됐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성경에 베드로의 지도자 역할을 증언하는 대목이 몇 차례 나오는데, 특히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이다.”(마태 16,13-19 참조)라는 구절이 가장 대표적인 근거로서 사용된다. 이후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교구의 주교에게 같은 우선권이 부여됐다.
교황 직무에 대한 초대 교회의 역사 기록은 다소 모호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로마의 주교가 다른 교구의 주교들보다 더 많은 권한을 행사했다고 말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로마의 주교가 다른 지역 교회들의 삶에 관여했고, 신학적인 이설(異說)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표명했으며, 교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 다른 주교들에게 자문 역할을 했다. 로마의 주교는 또한 모든 교회들의 일치의 구심점 역할도 했다.
교황의 단독적인 지도자 역할이 분명해진 것은 중세기부터다. 교황의 칭호로서 파파(papa)가 800년경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교황들은 대체로 황제들에 의해 선출되었는데,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에 와서야 교황을 선출하는 기구로서 추기경단이 설정되었다. 추기경단은 전 세계의 추기경들로 구성되며, 오늘날 교황 선거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에게 부여된다.
교황 제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바로 서구 문명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만큼 교황들이 세계의 역사에 영향을 끼쳐 왔기 때문이다. 교황들은 한동안 인간이 기울인 모든 노력과 시도의 중심에 있었다. 교황들은 법률들을 제정했고, 전쟁들을 수행했으며, 이단들에 맞서 싸웠고, 십자군을 지휘했으며, 성인들을 시성했고, 영토를 소유했으며, 교황좌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그런데 교황 제도에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보면, 합법적으로 교황에 선출되지 않았으면서도 교황의 권위를 주장하거나 행사한 반(反) 교황들이 31명이나 있었다. 이들은 서방 교회의 분열 시대(1377-1408년)의 교황들이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의 아비뇽과 로마에 각기 교황이 존재하며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교회를 통치했다. 그런가 하면 교황들 중에는 사생아를 낳아 기르고, 영적인 특전(恩典)뿐만 아니라 교황의 직무까지 사고팔고, 과도한 권력을 휘둘러 가난한 이들을 착취한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에 실망하기도 하겠지만, 교황 제도는 은혜롭게도 열심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신앙인들에 힘입어 존속해 왔다. 한때 종교 개혁 지도자들이 교회 안에서 행해지던 비열한 관행들을 놓고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가톨릭교회는 트렌토 공의회(1545-1563년)를 통해서 교황 제도의 안정을 꾀했다. 이 공의회는 법령과 질서를 정비했고, 진리를 철저하게 추구했으며, 교황의 권위를 강조했다.
이렇듯 방어적인 자세는 향후 수 세기 동안 견지되어 왔고, 1870년에 열린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때 교황의 무류성(無謬性) 교의 결정으로 그 절정에 달했다.
교황의 무류성
교황의 무류성은 아주 혼란스럽고도 또한 설명이 필요한 쟁점이다. 교황이 전체 교회의 신앙과 윤리에 관한 문제를 명시적으로 선포할 때는 무류권에 입각해서 말하는 것이므로 오류나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황은 신앙의 요체가 되는 진리를 선포하거나 선언하는데, 이때 무류성의 권위에 힘입어 오류 없이 그 진리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그 진리를 교의(敎義) 반열에 올리는 것이다.
주교들도 무류권을 공유하는데, 이는 그들이 공의회에 참석해서나 그 밖의 교도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교황과 일치하여 교의를 선포할 때에 그러하다. 그러나 무류권 또는 교황의 권위에 의한 가르침이 실제로 행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가장 최근에 무류권이 행사된 것은 성모 승천 교의를 선포한 1950년이었다.
교황의 직무와 주교직 공동체의 협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교황이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입각해서 그 권위를 행사해 왔다. 그리고 요한 23세 교황이 당대 세계와 좀 더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실질적인 변화를 몰고 오면서도 교황을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쇄신 정신이 유지되었고, 그래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할 때는 이전보다 자주 교황의 역할이 주교직 공동체(교황과 전 세계 모든 주교들의 모임)를 통하여 다른 주교들과 더불어 행사되었다. 교황이 더는 고집불통의 독재자가 아니라 자애로운 사도요, 사목자로서 주교 시노드와 같은 모임과 회의를 통해서 주교들과 협조해서 업무를 수행한다.
교황과 주교들은 교회의 가르치는 권한을 가진 교회의 최고 교도권자로서 신앙을 보존하고 전달할 책임이 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즉 공의회, 특별한 쟁점에 관해 교황이 반포하는 회칙, 그리고 일반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교회의 진리들을 확인하고 보존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더불어 시작된 교황 직무의 개방성과 대화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전의 교황들과 다르게 바티칸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곳곳을 방문하여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권능과 현존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늘날 교황은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을 이끌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일치와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망의 강력한 표징이자 영성적 지도자로서 세상에 존재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5월호, 이석규 베드로(가톨릭출판사 문화총서 편집간사,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 가톨릭교회에는 왜 교황이 있는가? (2)
교회의 행정 기구 - 바티칸
가톨릭교회의 중앙 행정 기구는 로마시 안에 있는 0.44㎢ 넓이의 바티칸에 자리 잡고 있다. 바티칸시국은 1929년 라테란 협정에 의거하여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 전에는 이탈리아 반도 중앙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교황령을 교황이 통치했다. 바티칸 시국은 자체의 통치 조직, 방송과 통신, 신문을 보유하고 있으며, 나름의 화폐와 우표를 발행한다.
여러 국가들과의 외교적 유대는 외교 사절로서 교황을 대리하는 교황 대사들을 통하여 수행된다. 교황청과 외교 관계가 없는 국가들에서는 교황을 대리해서 파견되는 교황 사절들을 통하여 수행된다. 교황 사절은 그가 파견되는 특정 국가에서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교회적, 신앙적 문제들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한다.
바티칸 시국에는 교황을 경호하고 교황청을 지키는 군대가 있는데, 이 군대는 1506년 이래로 스위스 출신의 가톨릭 신자 병사들로 구성, 유지되어 온다(스위스 근위대). 이 부대의 병사들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화려한 줄무늬 제복을 입는다.
바티칸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전인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또한 바티칸에는 바티칸 궁, 많은 희귀 필사본들을 소장한 도서관 등이 있고, 곳곳이 미술관이요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문화유산과 예술 작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교황청 행정 기구는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를 관장하는 중앙 조직이다. 이 행정 기구는 12세기부터 존재해 왔으며,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 발전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현재의 구조로 새롭게 재조직되었는데, 행정 · 사법 기관들과 평의회들, 학술원 사무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도표 참조>.
권위 면에서 교황 다음가는 지위는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의 왕자’로 알려져 있는 추기경이다. 오늘날 추기경은 대개 주교들 중에서 교황에 의해 임명된다. 추기경의 주된 직무는 콘클라베에 참석하여 교황을 선출하는 일이다(단, 교황 투표권은 80세까지만 주어진다). 추기경은 또한 교황청 행정 기구의 요원이나 외교 사절로서, 혹은 교구의 수장으로서 봉직한다.
지역 교회의 행정 기구 - 교구와 주교
세계 전역에 존재하는 가톨릭교회는 교회 재치권(裁治權)을 지닌 조직인 교구로 분할된다. 교구의 수장(교구장)인 주교는 자신의 교구 안에서 재치권을 가지며, 이를 행사한다. 교황은 로마의 주교로서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며,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데 있어서 각별한 역사적 맥락을 유지한다. 주교는 교황에 의해 임명되고,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사제를 서품하고 견진성사를 베풀 권한을 갖는다. 주교는 자신의 교구 안에서 성직자들을 임명하고, 교회 재산을 집행하며, 가톨릭의 신앙을 가르치고 그것이 올바르게 실행되도록 감독한다.
주교는 빨간색 수단을 입고, 주교 모자(테두리 없는 베레모처럼 생긴)를 쓰고, 주교 반지를 낀다. 전례를 거행할 때는 목장(목자의 지팡이)을 지니고, 삼각형 모양의 주교관을 쓰며, 커다란 가슴 십자가(귀금속으로 만들며, 값진 보석으로 장식하기도 한다)를 착용한다. 이것들은 모두 주교의 직무를 상징한다.
교구장은 통상적으로 주교가 맡는다. 그런데 교구의 규모가 큰 경우에 교구장 주교는 교구를 이끌어가는 데에 다른 주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임명된 주교 중에는 교구장 승계권을 가진 주교도 있고(부주교), 승계권을 갖지 않는 주교(보좌 주교)도 있다.
교구장 주교는 또한 교구를 이끌어 가는 데 있어 총대리와 사무처장의 도움을 받는다. 사무처장은 교구 행정과 통치, 증서, 기록 보관, 관면, 교회 관련 사안 등 모든 문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인 사무처의 수장이자 교구의 공증인이다. 총대리는 주교에 의해 교구 통치를 돕도록 임명된 주교 또는 사제로서 주교에게만 유보된 사안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재치권을 갖는다. 교구 내 사제들도 또한 참사회와 사제 평의회, 교구 법원, 그 밖의 직무들을 통해 교구장의 지도와 통치에 협조한다. 한편, 교구의 중심 성당은 주교좌성당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지역에 여러 교구들이 있을 때, 이 교구들의 으뜸 교구를 대교구라고 한다. 그리고 대교구를 이끄는 주교를 대주교라 한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교구들은 공동 사목 활동 증진과 교구장 주교들의 상호 관계 강화를 위해 결합하는데, 하나의 대교구와 하나 이상의 교구로 구성하는 이 교회 구역을 관구라고 한다(교회법 제431조 참조).
그러나 교구는 전체 가톨릭교회의 세분된 지역 교회로서 바티칸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각 교구의 주교는 교회법에 의해 5년마다 교구 사정과 상태를 교황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사도좌 정기 방문).
어찌 보면, 교회는 엄청나게 큰 단일 조직처럼 보인다. 가톨릭교회의 교계 구조는 아주 구체적이고 확연해 보인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권위와 구조는 함께 존재하면서 아주 긴요하게 서로 결부되어 있는 건축 현장의 비계(飛階)와 같다. 가톨릭교회의 본질과 정신과 신앙은 교회가 도입한 외적인 조직을 훨씬 넘어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6월호, 이석규 베드로(가톨릭출판사 문화총서 편집간사,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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