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0) 정치 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인 인간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정치가 바로 선다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공동체에는 일정한 규칙과 규범이 존재하며 인간은 이러한 규범들을 지키며 살아간다. 인간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 조율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행위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 정치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치하는 인간
사실 함께 무슨 일을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둘이 모여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한데, 여러 명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추진해 나갈 때에는 더 더욱 어렵다. 더군다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인 경우에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의사 결정에 있어서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지 충분히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그 사안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결정이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 개개인을 중심에 두고 결정해야 하기에 모든 결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제인 나 역시 신학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독신생활을 하는 사제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신학교 공동체 안에서도 공동의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을 조율하며 신학교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공동체성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인 동시에 정치적인 존재로서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고자 여러 가지 다양한 계획을 추구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인 동시에 정치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우연히 설정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성은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며 그 공동체 안에서 인간은 정치적인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 공동체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양심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에 새겨 놓으신 질서를 인간에게 일깨우고 이를 따르도록 요구한다.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질서는 개인과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든 삶과 관련된 문제들, 그리고 개별 국가와 국가 상호 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가장 큰 효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질서를 차츰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인류의 고유한 실재인 정치 공동체는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목적, 곧 진리와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이끌려 공동선 달성을 위하여 확고히 협력하도록 요청받는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84항 참조).
정치 공동체의 중심은 인간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 공동체의 가장 기초가 되는 토대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다. 다시 말해 정치 생활의 토대와 목적은 인간이며 인간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모든 정치활동, 모든 정치제도, 모든 정책 결정이 그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인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 자체를 정치 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뜻이 된다. 이는 곧 정치 공동체가 공동선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대 생활 안에서 공동선의 실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88항).
그렇다면 정치 공동체는 어떻게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을까? 정치 공동체는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참되게 실천하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들을 온전하게 이행할 수 있게 하는 인간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고자 노력함으로써 공동선을 추구한다. 따라서 정치 공동체는 공동선을 온전히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이중의 보완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 특히 정치 공동체는 특정한 개인이나 사회단체의 권리 보호에만 관심을 두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따라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정부는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개별 인간의 권리를 빼앗거나 그러한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는 데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89항 참조).
복음에 나타난 사랑의 계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 생활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일깨워 준다. 참으로 인간다운 정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사랑 그리고 공동선을 위한 봉사 정신을 길러 주고 정치 공동체의 진정한 성격과 공권력의 목적, 그 바른 행사와 한계 등에 관한 기본 신념을 북돋워 주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믿는 이들이 내세워야 할 목표는 바로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관계를 맺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점은, 사회 생활을 구성하기 위한 전형이자 일상 생활의 한 양식인 공동체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 되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92항 참조).
오늘날 한국 사회 안에서 정치인들이 추진하는 모든 정치 활동, 정책 결정이 국민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는 사회교리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평화신문, 2014년 9월 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