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57)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대 (9) ‘나눔의 샘’ 메말라 가는 대한민국
많은 이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던 때를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들 말합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취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상상치도 못할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짧다면 짧은 닷새 남짓한 시간 동안 ‘8월의 산타클로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교황이 전해준 선물을 응축해내면 ‘사랑’과 ‘연민’이 걸러지지 않을까 합니다. 굳이 힘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교황의 메시지에 담긴 사랑은 ‘나눔’과 ‘연대’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눔과 연대는 사랑을 표현하는 수많은 말들 가운데 가장 앞에 세울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등 이 땅에서 아파하는 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위로한 교황의 모습은 그리스도인들의 나눔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데서 머물지 않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고 그 눈 속에 담긴 슬픔까지 함께하려는 교황의 모습이야말로 2000년 전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사랑을 꼭 빼 닮았습니다. 그러했기에 교황이 떠난 후에도 그가 남긴 흔적이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방한 기간 중 그가 남긴 흔적에는 우리 시대의 징표가 녹아 있습니다.
교황의 발걸음을 되짚으면서 먼저 부끄러움이 끓어올랐음을 많은 이가 공감하였을 것입니다. 교황이 가장 많이 쓰는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부끄러움이 먼저 떠올랐던 것은 우리 가운데서 갈수록 참다운 나눔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나눔의 샘마저 고갈된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지상과제인 세상의 복음화는 힘겨운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눔의 샘이 말라가는 모습은 여러 곳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나라는 명색이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나눔의 모습만 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부끄러운 면이 적지 않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13세 이상 국민 중 1년 동안 기부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의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는 146개국 중 45위로 인도네시아(7위), 캄보디아(40위)보다도 낮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한 연구소가 지난 7월 발표한 ‘2014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인의 기부활동 참여율은 32.4%이고, 1인당 평균 기부금액은 21만 원에 그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나눔을 그리스도인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원천적인 사랑과 생명을 아낌없이 나눠주셨듯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받은 은총의 선물을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교회는 재화가 어느 한 사람이나 집단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으로부터 각자가 선물로 받은 것이기에 잠시 관리하고 돌려드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가르침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성찰하며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4년 9월 28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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