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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31: 사회교리와 정치적 권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07 조회수1,846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1) 사회교리와 정치적 권위

섬기고 봉사하면 권위는 저절로 따른다



권위주의가 팽배하던 시절, 나는 중ㆍ고등학교에 다녔다.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대통령이 되었던 1980년대 국가 공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을 보여줬다. 학교에도 군사주의 문화가 팽배했다. 외형적으로는 교복ㆍ두발 자율화 선포로 학원 자율화가 형성되는 듯 보였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 거리에는 늘 ‘독재타도’를 외치던 대학생들이 있었고 쾌쾌한 최루탄 가스 냄새로 눈물, 콧물 마를 날이 없었다. 나는 이런 시절에 학생선도부로 임명돼 학생들의 등하교 지도와 생활지도를 했다. 학생지도 선생님들의 묵인 아래 완장을 찬 채 학교폭력의 중심에 선 것이다. 복장ㆍ두발 불량자를 적발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죄의식은 못 느꼈다. 그러한 나의 행동이 선생님들의 권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장난이 심했던 친구 하나가 내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그 친구는 학급 청소를 하지 않고 뺀질거리며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학급의 반장이자 선도부원의 권한으로 벌을 내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엎드려 뻗치기를 시켰는데 그는 장난을 치며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결국 그 친구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친구의 행동이 결국 폭력으로 끝맺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친구가 등교하지 않았다. 혹시 내 행동 때문에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 몹시 걱정스러웠고 불안했다. 친구의 빈자리를 보면서 내가 가한 폭력을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할지 종일 고민했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이튿날 등교했다. 걷어차였던 부분의 통증으로 병원을 갔고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너무나도 미안했다. 더군다나 친구는 나와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어떤 권력을 쥐고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매우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사건 이후, 진정한 권위는 남을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섬김을 통해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권위의 주인은 하느님

사회교리는 권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사실 가톨릭교회는 권위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생각해 왔으며 인간의 사회적인 본성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의 전형을 제시하고 보호하고자 노력해왔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권위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본성상 사회적 존재로 만드셨고, 또한 모든 사회는 타인을 통치하는 자가 공동선을 향해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으므로, 문명화된 모든 공동체에는 통치 권위가 불가피하다. 이런 권위는 사회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그 권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지상의 평화」 46항).

또한 사회교리는 정치 권위가 개인과 집단의 자유로운 활동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자유를 통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며, 공동선을 달성하고자 개인과 사회 주체들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보호함으로써 질서 있고 올바른 공동체 생활을 보장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 권위를 행사하는 주체는 주권을 지닌 국민 전체이며, 국민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신의 대표를 선출하여 그 대표들에게 주권을 행사하도록 위임한다.

따라서 만일 통치 임무를 맡은 통치자들이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에는 국민들이 그 통치자들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오늘날의 모든 국가와 모든 형태의 정치 체제에서 그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94~395항 참조).


권위, 도덕적 질서를 바탕으로

그렇다면 그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권위가 지니는 모든 존엄성은 도덕 질서 안에서 행사됨으로써 비롯된다. 그리고 그 질서의 첫 번째 원리와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권위는 사회적 역사적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권력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권위는 도덕적 질서를 필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국민들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권위의 힘은 도덕적 질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독단적인 의지나 권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96항 참조).

따라서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 또한 부당한 법은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며, 도덕적으로 사악한 행위에 협력하도록 요청받을 때에도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이러한 거부는 도덕적인 의무인 동시에 인간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비록 국법이 인정한다더라도 하느님 법에 어긋나는 관습들에는 비공식적이더라도 협력하지 않아야 할 중대한 양심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협력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서, 또는 국법으로 상정되고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에 호소한다더라도 결코 정당해질 수 없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399항 참조).

진정한 권위의 시작은 섬김과 봉사에서 시작된다. 만일 이러한 권위가 섬김과 봉사라는 도덕적 질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권위는 불의한 권력으로 변화될 수 있다.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정치권력은 결국 폭력과 독재를 낳을 뿐이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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