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3) 지구 가족으로 함께 산다는 것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할 하느님 자녀
얼마 전 강의를 위해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을 찾았다. 아침 일찍 승용차를 몰고 나서는 길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늘 대중교통을 이용해 명동성당을 방문했었기에 모처럼 승용차를 이용해 명동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은 일이 되고 말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강화 신학교에서 출발했지만 2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강의 전에 시간이 남아 새롭게 단장된 명동성당을 살펴보기로 했다. 잘 꾸며진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오랜 만에 성당 마당 입구까지 올라갔는데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전만 하더라도 성당 경내에서 관광객을 만나는 일이 자주 있지 않았었는데 이제 한국을 찾아온 수많은 중국 관광객 덕분에(?) 명동성당 역시 기도의 장소가 아니라 중요한 관광명소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인데도 명동성당 근처의 도로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들로 심각한 교통 체증을 보였다. 10분이면 빠져나올 거리를 거의 한 시간가량이나 걸려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이제 한국 사회도 변방의 작은 국가가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이 모여 사는 세계화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세계화 그늘에 숨은 인종차별
어린 시절 나에게 외국인에 대한 기억은 성당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 시절엔 성당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을 직접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다 외국 사람을 직접 보려고 하면 거의 성당에서만 가능했다. 그것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1년에 한 번 사목방문과 견진성사를 집전하러 오시는 나 굴리엘모 주교님을 뵙는 것이 거의 유일하였다.
나는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이셨던 미국인 신부님에게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견진성사 역시 전임 교구장이셨던 나 굴리엘모 주교님께 받았는데 그분 역시 메리놀회 출신의 미국인 주교님이셨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한 후에 사제품 역시 나 주교님에게 받았다. 첫 본당 보좌 신부 시절에도 미국인 선교사 신부님인 방 신부님을 본당 신부님으로 모시고 살았다. 오랜 기간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신 방 신부님은 나의 초창기 사제 생활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보좌 신부 기간을 보내면서 나는 그분을 통해 서양의 합리적 사고방식과 사목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이는 후에 로마로 유학을 떠나 외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오늘날과 같이 국제적으로 변한 한국 사회 안에서 우리는 쉽게 외국인들과 만날 수 있다.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사는 수많은 사람이 내 이웃으로 존재하고 있고,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로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변에 많이 있으며, 대학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을 역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단일 민족, 단일 국가를 이야기하기에는 한국 사회가 너무나도 세계화(globalization)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세계화된 한국 사회 안에서 아직도 외국인에 대한 고정 관념과 편협한 사고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를 부끄럽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인종 차별적인 사고 때문에 발생하는 노동 현장의 외국인 근로자의 문제들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인종적, 종교적 편협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모두 동등한 인간
세계 인구가 70억을 넘어선 오늘날의 세계는 그야말로 다양한 인종과 사상, 그리고 종교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더는 인종이나 사상이나 종교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짓밟거나 가치를 폄훼하는 일을 국제 사회 안에서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특히 유색인종일수록,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일수록 더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에서는 인간을 똑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면서 인류의 단일성에 대하여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평등함과 존엄성을 존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단일성은 어느 시대에도 존재했는데, 인간은 타고난 존엄성에서 모두 평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적 공동선, 곧 전 인류의 공동선이 충분히 실현되는 객관적 요청이 항상 존재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32항)
만일 누군가가 더 행복한 가족 구성원이 되고 싶다면 나뿐만 아니라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대해 ‘지구촌 가족’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지구촌 가족’의 한 구성원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원한다면 그 구성원인 나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 지닌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인류 전체의 행복인 공동선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인류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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