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0) 환경 위기에 대한 인류의 공동책임
환경 개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인천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던 곳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도심이라는 생각보다는 농촌에 가까운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집에서 나와 학교 입구에 다다르면 학교 담장을 주변으로 작은 개울물이 흘렀고 그곳에서 쉽게 개구리를 만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뒷산에 올라가 친구들과 뛰어놀기도 했다. 아파트가 아직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친구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보고 싶어 학교 근처에 새로 건축된 아파트에 놀러 가기도 했다. 경비 아저씨 몰래 아파트에 들어가 처음 타 보았던 엘리베이터는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스러운 경험 중의 하나였다.
거의 40여 년 만에 찾아본 모교의 모습은 과거와는 달리 완전히 변했다. 학교 옆을 흐르던 작은 개울은 아스팔트 도로로 포장돼 자동차 길로 변했고, 학교 뒷산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대단위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방과 후 어린 우리에게 축구장도 되어 주고 야구장도 되어주었던 공터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대신 건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너무나도 큰 세계였던 학교는 이제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작은 공간으로 초라하게 변화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반 친구들과 온종일 함께 뛰어놀던 커다란 운동장도 너무나 작게 보였다. 그나마도 운동장 절반은 교직원들을 위한 주차 공간으로 바꿨다. 경제가 성장하고 나라가 발전됐다고 하지만 수십 년 만에 완전히 바뀌어 버린 옛 학교는 인간이 추구하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생각과 환경 개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무분별한 개발의 책임은 누가 지나?
제한된 공간에서 사는 인간은 더 나은 생활 공간을 마련한다는 이유 아래 새로운 용지를 마련한다. 구도심의 토지 비용이 너무 비싸기에 갯벌을 메우고 신도시를 건설하기도 한다. 새로운 부지에 공장을 세우고, 새 아파트를 건설하고, 도로를 포장하면서 개발자들은 소비자를 유혹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 왔다. 재물에 대한 인간의 이러한 무한한 욕심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원을 무분별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그릇된 공리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은 자신에게 맡겨진 자연 환경을 보존하거나 자연과 더불어 창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무분별하게 개발하면서 환경 오염이라는 새로운 문제점을 초래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단장된 신도시를 바라보면서 미관상으로는 깨끗해졌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서 막상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질병으로 신음한다. 이런 질병들은 이러한 인공적인 개발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때 정부에서 강을 살리고 홍수를 막겠다며 인공적으로 토목 공사를 강행했지만, 강물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지나친 화석 연료의 사용은 도심 스모그 현상과 지구 온난화 현상을 초래했으며,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홍보되던 원자력 에너지는 결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부분 국민이 알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환경보호, 인류 모두의 의무
가톨릭 교회에서는 환경 위기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메시지와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교도권의 가르침 안에서 환경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 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고찰을 무시하고 사물에 대한 조건 없는 지배를 주장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창조 자원에 대한 정밀한 조사 없는 무분별한 개발 행위는 이미 인간의 역사 안에서 역사적 문화적 과정의 부정적인 결과로 경험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61항 참조).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건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보존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 만일 인류가 새로운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강력한 윤리적 차원과 결합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 소중한 환경을 인류의 공동 서식지이자 자원으로 증진시킬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65항 참조). 따라서 환경 보호는 온 인류의 과제로서 인류 공동의 보편적인 의무가 된다. 더군다나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윤리적인 차원을 무시한 무분별한 개발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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