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98)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15) - 불세출의 리더 모세 (중)
어쩌자고 부르짖기만 하느냐! 믿음을 바쳐!
■ 카리스마의 비밀
모세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우뚝한 인물이다. 그는 어느 특정 범주에 갇히지 않는 멀티플레이어형 영도자였다. 그는 본디 레위인들의 사제 가문에 속하였지만(탈출 2,1 참조), 예언자이자(신명 34,10 참조) 입법자요 판관(사도 6,14 참조) 곧 영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된 땅까지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요즈음으로 치면, 입법·사법·행정 3권을 관장했을 뿐 아니라 종교적 리더십까지 행사했던 셈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그의 독보성을 이렇게 축약한다.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 주님께서 그를 보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와 온 나라에 일으키게 하신 그 모든 표징과 기적을 보아서도 그러하고, 모세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이룬 그 모든 위업과 그 모든 놀라운 대업을 보아서도 그러하다”(신명 34,10-12).
하느님과의 대면 대화, 이집트 파라오를 제압한 온갖 기적들, 시나이 산에서 받은 십계명 등 희대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모세의 면면에 대한 칭송이다. 워낙에 교양의 일환으로도 두루 알려진 바이니, 그가 하느님의 권능을 빌려 연출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및 광야 행군을 굳이 상세히 언술할 필요는 없으리라.
전대미문의 카리스마! 도대체 그것이 발원된 비밀은 무엇일까. 신명기는 그 답을 한 문장으로 제시한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모세처럼 겸손한 사람은 없었다”(민수 12,3 참조).
모세에 관한한 역시 예찬 일색인 후대 현자들의 촌평(집회 45,1-5 참조) 가운데에서도 비슷한 힌트가 발견된다.
“주님께서는 모세의 충실함과 온유함을 보시고 그를 거룩하게 하시어 만인 가운데에서 그를 선택하셨다”(집회 45,4).
무슨 주석이 더 필요하랴. ‘겸손’과 ‘온유’는 ‘순명’의 덕과 같은 과에 속하는 단어들로서, 사실상 순명을 가리킨다. ‘충실함’은 ‘충직’을 가리킨다. 요컨대, 모세의 카리스마는 100% 하느님 표 권능이라는 얘기다. 하느님 일에 부름받은 이들이 반드시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대목이다. 우리를 위한 모세의 한 수 멘토링에 귀 기울여 보자.
나 모세는 없었다.
그날 그 장관? 경천동지할 기적들? 홍해 바다의 갈라짐? 돌판에 새겨진 십계?
거기 모세는 없었다, 오직 야훼만 존재했을 뿐.
나는 그저 즐거운 바지 슈퍼맨, 진짜배기는 야훼 하느님!
전무(全無)에 전부(全部)가 임장했을 뿐.
카리스마?
말뜻 그대로 깡그리 그분으로부터 받은 것.
그냥 분부하신 대로 따랐더니,
그냥 한눈팔지 않고 끝까지 의리를 다했더니,
천하를 호령할 권능이 하늘에서 마구 쏟아졌을 뿐.
내 손에 들린 지팡이가 증언한다.
“그분께서는 준마의 힘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장정의 다리를 반기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당신 자애에 희망을 두는 이들을 좋아하신다”(시편 147,10-11).
그러니, 내 형형한 눈에 반하지 말고, 우주 끝에서 끝을 꿰뚫는 그분의 안광에 홀리라.
그러니, 나 모세를 경탄치 말고, 내 막후 야훼 하느님을 숭앙하라.
모세는 비밀이자 비결이자 답이다. 큰일을 꿈꾸는 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구비해야 하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다. 주님 앞에 겸손한 자, 곧 순명하는 자만이 바다를 가르는 카리스마를 행할 수 있음을, 그 명백한 진실을 드러내는 위대한 선배다.
■ 어쩌자고
모세가 이끈 이집트 탈출 대장정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홍해 바다를 건너는 대목이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자, 그토록 고집을 부렸던 파라오가 마음을 바꾼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내보낸다. 하지만 다시 미련한 욕심에 병거를 보내 그들을 추적하게 한다. 경황없이 쫓기던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다에 가로막혀 진퇴양난에 몰리게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할 테니 너희는 나를 믿기만 하여라”(탈출 14,13-14 참조).
그러시면서 양쪽 진영을 구름 기둥으로 막아 갈라놓으신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뜬금없이 모세가 하느님께 야단을 맞는다.
“모세, 너는 어쩌자고 부르짖기만 하느냐?”(탈출 14,15 참조)
아마도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던 것 같다. 이에 주님께서는 응답 대신 벽력같이 야단을 내리셨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주님께서는 처음 모세를 부르실 때 이미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는 약속과 함께, 뱀(=잡신), 병, 자연을 주무르는 세 가지 능력을 징표로 주셨다. 이들은 ‘지팡이’와 함께 모세에게 주어진 기적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10가지 재앙 때 훌륭하게 작동되었다. 그런데도 모세는 깜박 잊고서 발만 동동 구르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저 꾸중은 결국 이런 말씀이었던 셈이다.
“줬잖아! 얼른 써먹어, 그 지팡이!”
“???”
“우선 백성들부터 진군하라고 하고, 너는 바다를 향해 손을 뻗쳐라! 그리고 바다가 갈라지게 만들어!”(탈출 14,16 참조)
바다를 가른다? 모세 자신의 생각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상상이었지만, 모세는 하느님의 분부이니 눈 딱 감고 행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바다가 갈라졌다. 모세에게 임한 카리스마가 바다를 주물렀던 것이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맨땅을 딛고 바다를 넘어갔다.
모세의 지팡이에 내장된 카리스마는 결국 성령을 상징한다. ‘카리스마’라는 말뜻 자체가 ‘성령의 은사’다. 모세가 짚고 다녔던 그 지팡이는 신약으로 치면 특별한 성령의 은사였던 셈이다. 그리고 견진성사를 통하여 저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으로 치면 모두 지팡이 하나씩 받은 셈이다. 모세에게 일어난 저 극적인 해프닝은 성령의 은사를 잔뜩 받아놓고는 미처 발휘하지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며 특단의 조치를 청하는 우리를 향한 일갈이 아닐까.
저희가 다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으로도 못 가고 옆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고,
위로 솟지도 못하고 아래로 꺼지지도 못하고,
진퇴양난, 사면초가이올습니다.
살려주소서, 도와주소서, 구해 주소서.
너는 어쩌자고 부르짖기만 하느냐, 줬잖아, 써먹어!
믿음의 지팡이, 지혜와 능력의 성령은사.
문제의 바다 위에 두 손을 뻗고 카리스마의 권능으로 호령해!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썩 갈라져라.
주님의 백성이 나아가게시리 쫘-악 길을 내라.”
그리고 공허한 주문만 외지 말고, 요지부동의 믿음을 바쳐!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영광 받으소서.”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1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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