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낙수효과
기업이 잘되면 서민도 잘 살 수 있나?
기업이 잘돼야 서민이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기업이 잘돼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야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언뜻 듣기엔 그럴듯하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온갖 행정 규제들을 철폐해야 한다고 나선다. 대형 건물을 짓기 전에 거쳐야 하는 여러 규제도 철폐하고, 경미한(?) 환경오염 때문에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환경 규제도 당장에 철폐하잔다. 이렇게 기업이 잘되도록 국가가 앞장서서 도와준다. 그런데 기업이 잘되면 서민도 잘 살 수 있을까? 정말 그럴까?
불행하게도 통계청과 한국은행에서 나온 여러 통계들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바와 다르다. IMF가 있었던 1998년 이후 처분가능국민소득 중에 가계 소득과 기업의 소득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살펴봤더니, 기업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특히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외치며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한 이명박 정부에서는 아주 가파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기업소득이 증가할 때 가계소득 역시 증가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줄어들었다. 특히 기업소득이 가파르게 증가한 이명박 정부에서 가계소득은 가파르게 내려앉았다. 최근 10년 이상 삼성전자를 비롯한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계속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과 매출이익을 올렸다고 전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소식은 들을 수가 없다. 1인당 국민소득도 계속해서 좋아지는데, 왜 우리는 가난한가?
기업이 잘돼야 서민이 잘된다는 이론을 경제학에서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고 부르는데, 기업과 부자들의 항아리에 물이 차서 넘치면 가난한 이들에게도 물이 흘러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 이론은 검증이 안 된 가설이자 우리 사회의 통념일 뿐이다. 적어도 우리의 현실에서는 기업이 잘되는데도 서민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경제논리와 그것에 바탕한 현실에 대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을 거부”하라고 가르친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은 이렇게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자유 시장으로 부추겨진 경제 성장이 세상을 더욱 정의롭고 평등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낙수효과 이론을 여전히 옹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혀 확인되지 않은 이러한 견해는 경제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선의와, 지배적 경제제도의 신성시된 운용방식을 무턱대고 순진하게 믿는 것입니다!”
1997년에 발표된 영국 주교회의의 가르침 ‘공동선,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의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경제 법칙의 당연한 귀결로서 이미 부자인 사람들이 더욱 부유해지면 덜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도 개선된다는 그들의 주장에 우리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의 주장은 실제 경험뿐만 아니라 상식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의 경제적 이익 추구를 정당화하고자 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기업이 잘된다고 곧바로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서민의 삶이 나아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업의 이익이 서민들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여러 가지 규제를 통해서 조정해야 하고, 또 복지 제도를 더욱 더 보편적으로 확대해나가야만 한다. 정부가 대기업의 편에 서서 규제 철폐만을 외치는 것은 서민들의 경제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효율적인 시장경제를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진짜로 서민들의 삶이 걱정이 된다면, 연대성에 기초한 공동체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그것을 제도로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이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교구에서 직장노동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3월 22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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