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09)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26) - 킹메이커, 사무엘
왕정시대 창립에 결정적 역할, 사울 다윗에 기름 부어
■ 하느님의 계획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야훼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아이, 사무엘. 그는 엄마의 독종 신앙 덕에 ‘젖을 떼자마자’ 도로 하느님께 봉헌되어, 실로 성전의 사제 엘리 밑에서 양육된다. 실로 성전에는 야훼의 궤가 모셔져 있어, 이를테면 예루살렘 성전의 전신이었다. 그러니 사제 엘리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사제였던 셈이다.
그런데, 사무엘이 그런 엘리의 수하에서 자란다고 하여 그가 사제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본디 사제직은 아론의 후예들에게서 세습되었다. 그러기에 실로 성전을 관장하는 사제직에 대한 우선권은 엘리의 자녀들에게 유보된 것이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 사무엘을 엘리의 자식들을 대신하여 실로 성전을 책임질 엘리의 후계자로 세우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엘리의 자식들이 하느님 눈을 거스르는 죄를 자꾸 범하여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1사무 2,17.25 참조).
이 일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수순으로, 사무엘을 공공연하게 부르신다(1사무 3장 참조). 유년기의 사무엘에게 어느 날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사무엘은 엘리가 부른 줄 알고 그에게 가서 물어본다. “부르셨습니까?”
엘리가 대답한다. “어? 아니야, 아니야.”
이런 일이 한 번 더 반복된다. 엘리는 마침내 알아차린다. 엘리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일러 준다. “다음에 또 그러거든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한번 해 봐라.”
사무엘은 그대로 하였다(1사무 3,10 참조). 그랬더니 정말 야훼 하느님께서 사무엘에게 대화를 시작하신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무엘의 성소(聖召) 이야기다. 이는 사무엘을 향한 하느님의 부르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제 엘리를 향한 일종의 ‘귀띔’이기도 했다.
두 번째 수순으로, 사제 엘리 일가를 몰락시킨다. 이는 비극적으로 진행된다. 하느님께서는 타락한 엘리의 아들들을 치시기 위하여 인근 필리스티아 군의 침공을 허락하신다. 일단 방어군이 대패하자 엘리의 두 아들들이 백전백승의 담보인 ‘야훼의 궤’를 앞장세워 군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간다. 그런데 적에게 패하는 것은 물론 두 아들이 전사하고 야훼의 궤마저 빼앗기고 만다. 이 비보를 들은 엘리는 그 충격으로 목이 부러져 죽는다(1사무 4,18 참조).
결국 사제 엘리 집안의 대는 끊기게 되고, 실로 성전 사제직은 공석이 된다. 후임은 당연히 실로 성전에서 잔뼈가 굵은 사무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기막힌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이다.
■ 킹메이커 사무엘
엘리의 제자였던 사무엘은 이제 실로 성전을 관장하는 ‘사제’가 된다. 판관시대 당시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사무엘은 이와 동시에 ‘예언자’요 ‘판관’으로 활약하도록 부름 받는다. 판관으로서도 사무엘의 위업은 혁혁한 것이었다. 그의 기도로써 천둥 번개까지 동원되었으니(1사무 7,10 참조), 백성에게 그의 권위는 가히 일신(一神)지하 만인(萬人)지상의 것이었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가 기억하는 사무엘의 정체성은 누가 뭐래도 ‘킹메이커’다. 그는 판관시대를 종식시키고 왕정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판관시대가 200년 이상 지속되자 백성들은 점점 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해줄 ‘임금’을 원한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폭정과 착취로 기울 수 있는 왕정의 위험을 충분히 숙지시켜주신 후, 사무엘로 하여금 임금을 뽑아 세울 것을 명하신다.
사무엘은 뭇 후보자들 가운데 하느님의 직접적인 분부에 따라 먼저 사울을 간택하여 자신의 손으로 기름을 붓는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사울 시대가 기울을 즈음, 소년 다윗에게도 기름을 붓는 예식을 치렀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어떤 인물을 임금 감으로 미리 눈여겨 봐 두셨을까.
첫 번째로, 벤야민 지파의 한 사람, 사울이다. 그는 잘생긴 외모(1사무 9,2 참조)와 겸손한 마음(1사무 9,21 참조)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택하시고는 사무엘에게 기름 붓는 예식 절차를 밟게 하신다. 이에 “하느님의 영이 사울에게 들이닥치니”(1사무 11,6), 당시 30세의 사울에게 임금의 카리스마가 임하여 초기 몇 년간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훌륭하게 통치를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던 사울은 이내 하느님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 이유는 사울이 급박한 상황논리를 내세워 사무엘의 예언직과 사제직에 월권을 행하고(1사무 13장 참조), 제물마련을 핑계로 우상의 잔재를 몰살해야 하는 헤렘법을 어겼던 데에 있었다(1사무 15,13-23 참조). 사울의 이런 불순명은 하느님의 후회를 촉발시켰다. 이에 사무엘은 사울에게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전한다.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1사무 15,22-23).
이후 사무엘은 더 이상 사울을 보지 않았다. 바로 이 시점에 하느님은 한 아이를 미리 왕으로 점지해놓으신다. 즉위식까지는 못되지만 미리 가서 축성을 해놓는다. 바로 다윗이다. 그가 뽑힌 기준은 이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바로 그날 저녁, 실로 성전에서는 사무엘의 나지막한 기도 소리가 평화로이 맴돌지 않았을까.
기름을 부었습니다.
오늘, 주님 손수 점지하신 사내 아이 정수리에
성령의 올리브유 한껏 부었습니다.
8형제 가운데 그의 아비 이사이의 천거를 받은
선 굵은 재목들은 모조리 퇴짜 놓으시고,
“너희, 외모를 보지만, 나, 마음을 본다”시며
굳이 찜해 주신 파리한 막내아이 보름달 같은 머리통.
그 위에 성별된 이 종의 손을 얹었습니다.
홀연, 번개 내리듯 찌릿하게 성령이 덮쳤습니다.
순간, 주님만 아시고 저만 들은 말씀 여진이 되어
줄곧 제 뇌리를 연타합니다.
“그가 참 임금이다.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2사무 7,13 참조).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때, 주님 분부 따라, 잘생긴 외모에 겸손을 갖춘 호걸(豪傑)에게
정성을 모아 성령의 도유를 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불현듯 임한 카리스마는 백성들의 연호 속에,
승승장구 ‘사울 만세’로 빛났습니다.
방심하면 추락을 부르는 것이 칭송의 뒤끝!
슬며시 움튼 그의 교만은 제 사제직을 범하고,
급기야 말씀과 주님까지 배척했습니다.
추상같이 내리신 주님의 후회심정과 배척응징을 전한 이후,
제 입술은 입때까지 떨리기만 할 뿐.
아-아 오늘,
다시 기름을 부었습니다.
시방도 주님만 아시고 저만 들은 말씀 여진이 되어
줄곧 제 뇌리를 연타합니다.
“그가 참 임금이다.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2사무 7,13 참조).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3월 22일,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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