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교리]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보여준다면 인간은 그 가운데서도 탁월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생활 : 인간
인간은 이 세상 만물 가운데서 고등동물로 분류합니다. 복잡한 체제를 갖춘 동물을 고등동물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고등동물 가운데에서도 사고와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고 문명과 사회를 이루고 사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동물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인간은 역사의 흐름 안에서 문명을 일으키고 생활방식을 발전시키며 하나의 거대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본성과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인 상황에서 이를 조절하고 선택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동물은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보면 본능적으로 먹지만, 인간은 배가 고파도 상황에 따라 먹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을 알고 이를 선택하며,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행을 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서 한국 천주교회의 성조(聖祖)라 부르는 광암 이벽 요한 세례자는 ‘천주공경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죄 짓고서 두려운 자 천주 없다 시비 마소.”
인간은 아무도 보지 않은 잘못을 저지른 뒤에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누군가가 악행을 저지른 자신을 보고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리고 잘못을 고백하고 그에 맞는 보상을 했을 때에 후련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인간의 남다른 특징에 대해 교회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이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지각을 넘어 사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 선과 악을 알고 이를 선택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 그러면서도 악을 선택했을 때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는 것. 이는 인간이 참지혜이시고 선이시며 자유로우신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해성사를 주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할머니가 들어와서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고백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떤 숭고함이 느껴졌습니다. 할머니는 악행을 멀리하고 착하게 살고자 하는 깊은 뜻을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사죄경을 받은 할머니는 해맑게 웃으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하느님께서 제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요!”
순간 저는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씀하시는 그 할머니에게서 하느님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습니다. 한 사람 안에 숨어계신 하느님의 모습이 내 눈 앞에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교리 :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702항).
인간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인간은 인성을 지녔지 신성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이들에게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서, 회개하는 이들에게서, 마음이 온유하며 겸손한 이들에게서, 선행을 하는 이들에게서, 사랑으로 희생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어떤 거룩함을 느낍니다.
“인간 하나하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므로, 존엄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단순히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이다. 인간은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주체가 되며,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 은총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와 계약을 맺고,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신앙과 사랑의 응답을 드리도록 부름을 받았다”(「가톨릭교회교리서」, 357항).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근원이 됩니다. 인간은 단순한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입니다. 인간이 인격체이고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수단이 될 수 없고 그 자체로 목적을 지닌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다른 피조물을 ‘사용’할 수는 있어도 인간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불멸의 영혼을 받은 인간은 ‘지상에서 그 자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바라신 유일한 피조물’이다. 임신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영원한 행복을 향하게 되어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703항).
말씀 : 참 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콜로 1,15-16).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육화되신 말씀’으로 고백합니다. 강생의 신비에는 창조주께서 다른 피조물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지닌 피조물, 곧 ‘인간’이 되신 신비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우리가 지닌 하느님의 모습을 훼손하였지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참모습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을 마음에 모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16)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참모습이신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며,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형제입니다. 나의 이웃인 형제들 안에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에 우리가 서로 돕고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 사랑이 됩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인간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려면, 무엇보다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들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봉사하여야 합니다.
- 내 안에 하느님의 영이 계시고 나에게 하느님의 모습이 있음을 느껴봅시다. 내가 평범함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숭고한 삶으로 초대받았음을 성찰해 봅시다. 그 삶은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데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그들도 나처럼 나약하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거기에 감탄해 봅시다.
- 이웃에게 특히 ‘가장 작은 형제’에게 봉사합시다. 나의 봉사를 받는 이들은 모두 예수님이심을 깨달아 봅시다. 그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른편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 고성균 요한 세례자 - 도미니코수도회 수사. 현재 수도회 지원기 양성 담당자 소임을 맡고 있다. 단순하고 즐겁게 형제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경향잡지, 2015년 10월호, 고성균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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