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펀(FunFun) 교리] (42) 죄와 악 ①
살인 · 폭행 일상의 수많은 범죄들… 하느님은 아실까 민이 : 세라 자매님, 뉴스 보셨어요? 보험금 받으려고 제초제가 든 음식을 가족에게 먹인….
세라 : 어휴, 형제님. 저는 너무 끔찍해서 보다가 TV를 꺼버렸어요.
민이 : 그렇죠? 정말 끔찍한 일이었어요.
세라 : 저는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하느님이 보고는 계실까, 알고는 계실까 하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어요.
주땡 : 안녕하세요, 세라 자매님, 민이 형제님. 무슨 얘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나누고 계세요?
민이 : 안녕하세요, 신부님. 오늘 뉴스에 나온 살인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이런 일이 왜 계속 벌어지는 건지 궁금해요.
주땡 : 아…, 민이 형제님, 세라 자매님. 그런 의문들, 앞으로 신앙생활 하시면서 많이 가지게 되실 거예요. 저는 그런 질문들이 나오면, 보통 미용실 이야기로 대답을 시작하는데요.
민이 : 미용실이요?
주땡 : 네, 들어보세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한 여자가 미용실에 간 거죠. 이런저런 대화 중 그 여자가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미용사가 얘기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있다면 이 세상에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리가 없다. 끔찍한 죄인들도 너무 많다. 결국 하느님은 없는 거다.”
세라 : 저런…,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대답했나요?
주땡 : 때마침 그때 마구 헝클어진 머리에 지저분한 몰골을 한 사람이 창밖에서 미용실을 들여다보더니 그냥 지나갔죠. 그 모습을 본 여자가 미용사에게 얘기하는 거예요. “저렇게 더럽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이 세상엔 미용사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러자 미용사가 대답하죠. “아니요, 미용사는 존재해요. 문제는 사람들이 미용사에게 오지 않는다는 거죠.”
민이 : 아하, 결국 인간이 하느님께로 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더럽혀지고 있다는 그런 비유인가요?
주땡 :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인간을 너무 사랑하셨기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결정해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지요.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졌고 하느님을 찾아오지 않는 상태에서 자유의지로 죄를 짓지요. 탐욕·잔인함·불의·악의 등 수많은 죄들은 결국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 봐야하는 거죠.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1일, 교리 지도 주요한 신부(오천고 교목실장), 정리 우세민 · 이나영 기자]
[펀펀(FunFun) 교리] (43) 죄와 악 ②
‘악’은 실존 대상 아닌 ‘선’ 결핍된 상태
세라 : 하느님이 악인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멀어진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스스로 죄를 짓는다는 것,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신부님.
주땡 : 네, 세라 자매님.
세라 : 문득 자연재해는 왜 벌어지는 것인지 궁금해졌어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사람들이 태풍, 홍수 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잖아요.
주땡 : 그렇죠. 자연재해를 하느님이 주신 벌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많죠. 하지만 하느님은 자연 역시 ‘자연법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 두셨을 뿐이랍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악은 자연법칙들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민이 : 아…,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惡)들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땡 :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빛과 어둠을 예로 들어 ‘악’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어요. 전구, 횃불 등 세상에는 빛을 만들어내는 도구들이 많죠? 그럼 어둠을 만들어내는 도구를 본 적이 있나요?
세라 : 어둠을 만들어내는 도구요? 빛을 가리면 어둠이 되는데 굳이 그런 것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요?
주땡 : 우와, 세라 자매님. 정확히 말씀하셨어요. 빛은 이 세상에 실제 존재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어요. 하지만 어둠은 빛이 차단된 상태일 뿐 실존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 역시 어둠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어요. 빛을 가려 어둠이 되듯, 선 그 자체이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면 악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죠. 결국 악이란 실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선이 결핍된 상태인거죠.
세라 : 선이 충만한 태초의 모습을 지키려면 늘 하느님 곁에 머물러야겠군요.
주땡 : 죄와 악, 이 문제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올바른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한데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고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앞으로 내 삶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면…?
민이 : 어휴, 신부님. 왜 그렇게 극단적인 말씀을 하세요.
주땡 : 하하. 우리는 결국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어서 하늘나라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당장 한 달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결국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하늘나라이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해보면 하느님 뜻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되지요. 11월은 위령성월이니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역설적이게도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잘 묵상해야 하는 것이죠.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8일, 교리 지도 주요한 신부(오천고 교목실장), 정리 우세민 · 이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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