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민주정부 3기, 다시 남·북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대립 아닌 평화의 길, 두 손 잡읍시다 17년 전,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은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마음 모아 성취한 것으로 꽁꽁 얼어붙은 동토, 한반도에 새로운 희망이 싹텄고 동아시아, 세계가 지지하고 성과를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남쪽은 1948년 8월 15일, 북은 9월 9일 각각 자신들의 공화국을 세운 후 긴 세월 유지된 분단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이었습니다. 70여 년의 분단은 수많은 부조리를 낳았습니다.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리는 실향민들의 타는 가슴만큼 민족의 동질성이 훼손되었고 긴 세월은 문화와 언어의 이질성, 배타성을 키워 불신과 대립을 부추겼습니다. 특히 민족의 역사가 왜곡, 변질되며 다른 길을 향하고 있습니다. 흡혈귀 같은 주변의 강대국은 분단 상황을 이용해 우리를 계속 위협하고 무엇보다도 끝없는 군비경쟁을 유도합니다. 제 살을 깎는 막대한 군사비용은, 현재 1년에 70억 달러(약 9조)의 최대 무기수입국으로 수치스런 모습의 외교, 정치, 국방의 현실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508항은 “군비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고 엄청난 양의 무기 증가는 안전과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전쟁무기의 균형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신뢰에 의해 참된 평화가 확립된다는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지상의 평화」 113항) 평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우리는 모두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싶어 합니다. 비오 12세는 ‘평화로 없어질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전쟁으로는 모든 것이 멸망할 것’(1939. 8. 24. 라디오방송 메시지)이라 했습니다. 남북은 전쟁과 독재를 겪으면서 서로 닮은 듯, 지금의 대립과 분쟁의 일상을 평화라고 주장합니다.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는 현재는 엄청난 군사비용과 무기가 균형을 지키는 것으로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때문에 2000년 6월 13~15일 남·북 정상의 만남을 기억합니다. 만나서 잊혀져가는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노력만이 평화를 앞당길 것임을 확신합니다. 무기 장사를 위해 남, 북의 불화를 부추기고 분쟁과 전쟁을 조장하는 주변 강대국과 그에 맞장구치는 일부 세력과 언론의 행태는 이제 넌덜머리 납니다. 민주정부 3기가 시작된 지금, 2000년 6월 13일, 2007년 10월 4일 두 번의 정상회담의 기억으로 다시 만나야 합니다. 모순과 불화와 대결의 어리석음을 지속하면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정상회담 2년 후, 2002년 6월 13일 꽃다운 효순, 미선은 경기도 양주, 우리 땅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고 덩그러니 서 있는 추모비 하나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새롭고도 슬픈 기억, 딱 15년 전입니다. 누구를 위한 희생이며 미군 장갑차는 왜 우리 땅에 와 있으며 이 모순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1년에 150여 명이 장병들이 군에서 사고로 희생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죽음입니까?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또 다른 희생을 막는 길이며 우리 땅에서 다른 나라 군대가 떠나는 길이며 1년 150여 명의 젊은이들이 가족에게 돌아오는 길이며 인간의 위엄을 찾는 길입니다. 남, 북이 만나는 일, 그보다 더 ‘평화’를 성취하는 길이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11일, 양운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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