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부와 함께 읽는 가톨릭 사회교리서 『두캣(Ducat)』 제7장 경제,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와 정의 1. 무엇을 사기 위해 무엇을 파는가? 경제라 하면 먹고 살기 위해 무엇을 팔고 사는 행위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팔고 사는 것들을 보면,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들이 거래되고, 돈으로 값을 따져서 안 될 것이 매매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마실 물을 병에 담아 파는 것은 열사의 산유국에서나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생수병에 담긴 물을 사 먹는 게 보편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요즘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에 900원쯤 하지요. 같은 양만큼 휘발유를 사면 700원도 안됩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물 값이 기름 값보다 더 비싸게 되었는데도 그러려니 하고 맙니다. 경제는 나름의 논리와 체계를 가지고 작동되는 것이라서 우리 상식이나 윤리의 문제와는 별로 관계없다는 편견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교리서 『두캣』 제7장은 그런 편견에 맞서서 우리가 벌이고 있는 ‘경제’활동의 본질과 역할을 다시 짚어 보자고 권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프레데릭 베그베데는 오늘날 상식과 윤리를 내던져 버린 ‘경제’의 일그러진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가난한 사람들은 나이키를 사기 위해 마약을 팔고, 부유한 사람들은 마약을 사기 위해 나이키를 판다.”(『두캣』, 180쪽) 이 작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가 경제와 윤리를 분리해서 생각한 탓에 인간의 진정한 필요와는 관계없이 작동하는 경제라는 괴물을 키워 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경제가 발전했다는데 삶은 더 팍팍해지고, 사회의 부가 증대되었다는데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커지는 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회교리는 이제 우리가 무엇을 사기 위해서 무엇을 팔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권합니다. 경제의 본질과 역할을 신앙의 눈으로 다시 보라는 말씀입니다. 2. 경제의 중심은 인간이다. 경제에 관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경제 활동이란 곧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밝힙니다. “인간은 순전히 덧붙여진 경제적 요인이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결코 경제적인 평가로 제한될 수 없는 본성과 존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모든 인간의 물질적이고 영적인 기본 선익을 위한 배려가 모든 정치적이고 경제적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며, 그러한 활동과 윤리적 가치를 위한 궁극적인 척도입니다. 또한 경제와 정치의 목적은 가장 가난한 사람과 나약한 사람에게서부터 시작하여… 인류 전체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영국 총리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경제에 관해 복잡한 이론과 수식을 줄줄 꿰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와 정의”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것을 훔쳐 누군가의 허영과 사치에 이바지하게 하는 경제라면 이제는 고쳐 써야 하지 않을까요? [2017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일 대구주보 3면,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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