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3. 교회의 믿음(「가톨릭 교회 교리서」 166~184항)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옛날에 어떤 장군이 성을 점령하고 여자들만 살려줄 테니 가장 귀한 것 하나씩만 가져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큰 보자기를 힘겹게 메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장군이 그 여자를 세워 자루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그 여자의 남편이 들어있었습니다. 여자는 “저에겐 이 사람이 제일 소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장군은 훌륭한 아내를 둔 그 남자를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집에 불이 났어도 10억짜리 보석이 있다면 그 보석은 불에 탈 염려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집 주인이 기필코 들고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해줄 분의 품에 머물러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시는 것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마지막 때 예수님은 당신 교회를 먼저 구해주실 것입니다. 당신 자신처럼 소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은 주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교회에 머무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께 사랑받는 이유는 교회의 당신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입니다.(히브 11,6 참조) 교회는 개인의 믿음을 훨씬 넘어서는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168항 참조) 교회 안에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에 그 성령께서 주시는 진리와 믿음이 충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개인의 재산을 다 모으면 한 나라의 재산이 엄청나듯, 개개인의 믿음이 합쳐진 교회 전체의 믿음은 실로 완전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찬례를 거행할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기는 하지만 그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게 만들 믿음은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그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할 수 있게 만드는 믿음이 바로 ‘교회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믿음’을 믿기 때문에 사제의 신심에 의지하지 않고도 성변화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빵과 포도주가 변하는 기적은 동이에 물을 붓고 또 그 물을 떠서 과방장에게 가져간 종들의 믿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계셨던 성모 마리아의 믿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고 하지 않으셨다면 종들의 믿음만으로는 그 기적이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들은 그저 교회가 시키는 대로 할뿐이고 그 기적이 미사 안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믿음은 ‘교회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개인들의 믿음의 합’을 보시고 기적을 행하신 적도 있으십니다.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예수님 앞으로 한 중풍병자를 들것에 내려 보낸 네 명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아닌 ‘그를 들고 온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와 용서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유아세례가 가능한 것도 그 아기를 데리고 온 부모와 가족들의 믿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 가정의 믿음, 혹은 네 명의 믿음만을 보시고도 기적을 일으켜주시고 죄를 용서해주시는데, 수억의 신앙인이 굳게 믿는 성찬의 기적과 죄의 용서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사 때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교회의 믿음은 우리 각자의 믿음보다 항상 크기에 우리가 그 믿음에 의탁할 줄 안다면 교회가 받는 구원도 함께 누리게 됩니다. 같은 배에 타고 있다면 그 배에서 뱃멀미를 했더라도 같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신앙인을 탄생시키는 어머니와 같습니다.(169항 참조) 성 치프리아노는 “교회를 어머니로 삼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하느님을 아버지로 삼을 수 없다”(181항)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믿음 안에서 성장하라고 교회를 세우시고 파견하셨음에도 개별적인 믿음으로 주님께 가려는 이들은 교회를 통해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교회를 파견하신 예수님의 노력을 무시하는 격이 됩니다. 개별적 믿음보다 교회의 믿음이 항상 더 크다면 개인들은 그 교회의 믿음에 의지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교회는 어머니이고 예수님은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를 떠나는 자녀는 아버지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3월 31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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