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을 믿는가
우리의 자리에서 ‘부활의 삶’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시작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부활을 통해 만물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과연 부활을 어떻게 믿는가? 믿고는 있는가? 예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돌아보고, 참된 부활 신앙을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교 교리를 집약한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또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예수가 부활함으로써 인류는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조차 다시 죽음에서 부활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인들은 과연 교회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믿고 있을까? 독일 슈피겔(Spiegel)지 2019년 4월 20일자 표지(오른쪽 사진)는 구름을 딛고 하늘로 오르는, 부활한 예수의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예수의 모습을 가로지르는 글은 “누가 그것을 믿을까?(WER GLAUBT DENN SOWAS?)”였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망라해 신의 존재와 예수 부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조사한 특집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한 사람들은 절반이 조금 넘는 55%였다. 그리고 그 중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54%였다. 가톨릭 신자들 중에는 61%, 개신교 신자는 58%, 비그리스도인들은 22%만이 예수 부활을 믿는다고 응답했다. 즉, 독일의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 신은 믿지만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39%이고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그 비율이 42%라는 말이다. 2017년 영국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BBC가 2017년 2월에 열흘간 2010명의 영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정확히 절반만이 예수의 부활을 믿었다. 특히 예수 부활을 성경에 묘사된 대로 믿는 사람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사람 중에서도 채 3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라스무센 보고서’(Rasmussen Reports) 조사에 의하면, 2009년 예수 부활을 믿는 미국 성인은 79%였지만 2016년에는 75%에 그쳐, 줄어드는 추세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부활 신앙에 대한 인식 조사는 많지 않을 뿐더러 조사에 따라 많은 편차를 보이는데, 1993년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8.1%만이 부활 신앙을 확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후인 1995년 조사에서는 부활에 대해 전혀 혹은 별로 믿지 못하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30%에 달했다. 반면, 서울대교구 사목국이 2017년 소공동체 도입 25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죽음 이후 부활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믿음에 대다수인 86.7%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하지만 교회의 거룩한 전통인 ‘성전’(聖傳)에 대한 믿음에 96.5%, “하느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믿음에 97.3%가 긍정적으로 답한 것에 비춰 상대적으로 부활 신앙에 대한 믿음은 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예수의 부활, 그리고 죽음 후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면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증거는 없을까?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예수 부활이 역사적이면서도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639~647항) 물론 예수 부활이 역사적, 과학적 증거들로 완벽하게 입증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앙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여 믿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는 역사적 증거와 논리는 존재한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자연과학과 합리적 이성에 의해서도 예수 부활의 역사성은 비록 ‘입증’하지는 못해도 설득력 있는 ‘방증’은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부활에 대한 수많은 역사적 증언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논리적으로도, 이러한 모든 증언들이 거짓일 수는 없고, 또는 세뇌나 조작에 의한 집단적 환각 증세로 여길 수도 없다.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증언은 성경 기록이다. 예수 부활의 묘사가 복음서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부활의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확고하게 만든다. 즉, 사소한 차이들이 오히려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부활 기록들은 부분적 모순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다. 이미 그 역사적 사실이 인정되는 ‘빈 무덤’은 부활의 증거다. 무덤이 비어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시도됐지만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빈 무덤 자체가 예수 부활의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부활의 역사성을 증거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가장 확고한 예수 부활의 증거는 부활한 예수를 만난 제자들의 놀라운 변화다. 스승의 죽음으로 모든 희망을 잃고 좌절에 빠져 사방으로 흩어졌던 제자들은 갑자기 부활한 예수의 증인으로 변화한다. 온갖 박해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구세주에 대한 믿음과 구원의 희망을 굳건하게 선포한다. 이는 확인할 수 없는 부활을 막연히 믿어서가 아니라 부활한 주님을 직접 만나고 체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의 복음을 확신하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로부터 교회가 시작됐고, 2000년이 넘도록 부활한 예수에 대한 복음 선포가 이어졌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자체가 바로 예수 부활의 가장 확고한 증거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부활에 대한 믿음은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그것이 문자 그대로 죽어서 썩을 시체가 생생한 피와 살로 되돌려졌다고 믿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부활 사건의 핵심은 감각 기관으로 지각할 수 없는 것”이며 “역사를 초월하고 넘어선다는 면에서 부활은 여전히 신앙의 신비의 핵심에 머물러 있다”(647항)고 가르친다.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은 “‘육신 부활’은 시체가 무덤에서 되살아난다는 것이 아니라 영혼-육신의 합일체인 인간이 죽음 속에서 하느님께 구원돼 전인으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제민 신부(마산교구 원로사목자)는 2012년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자신의 부활관에 대해서 발표하며 “부활을 ‘죽음 다음에 오는 삶’으로 고정시키고, 예수의 부활마저 ‘그분의 시체가 되살아난’ 것으로 여기고 이를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죽기 전에 부활의 삶을 산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결국,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 제자들이야말로 부활의 확고한 증거이듯,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각자 자기 자리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곧 부활의 역사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20년 4월 12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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