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79. 가톨릭교회와 노동 - "우리의 생각도 복음적이어야 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71항)
노동은 성숙한 공동체 건설과 인간성화를 지향한다 마리아: 신부님, 친구랑 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로봇쉐프가 국수를 말아 주더라고요! 굉장히 신기했어요. 국수도 정말 맛있었어요! 베드로: 한편으로 걱정이 돼요. 저는 요리사가 꿈인데, 뛰어난 로봇쉐프가 많아지면 당연히 일자리도 줄고요. 세계적인 바둑기사들도 인공지능 알파고한테 지는데, 세계적인 로봇쉐프가 나오면 제가 요리사가 될 필요가 있을까요? 이 신부: 우리 함께 이야기를 나눠 봐요! 업(業)의 변화 아침에 출근하신 아버지가 저녁에 퇴근하시고, 아버지는 평생 그 회사에 다니신다고, 으레 그리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말에 가족이 함께 성당에 가는 것, 평생직장, 정년퇴직이라는 개념도 아직 익숙한 말들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자리와 직업,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얼마나 될까요? 반면 비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고, 3~4시간짜리 단시간, 쪼개기 알바도 많습니다. 심지어 인간 대신에 로봇이 일을 합니다. 기술을 배워 두면 평생 먹고살 것이라는 통념마저 깨졌습니다. 국수를 만들어 주는 로봇쉐프, 커피를 타 주는 바리스타 로봇…. 로봇 알바는 이제 곳곳에 눈에 띕니다.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던 기술발전에 따른 ‘인간 노동의 종말’이 목전으로 온 것일까요? 스마트폰 앱을 통한 디지털 플랫폼 시장과 일자리가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 산업사회에서 노동과 자본의 갈등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기술과 인간의 갈등으로 파생되려 합니다. 4차 산업혁명과 비대면 온라인 모바일 노동의 그늘 우려의 핵심은 불안한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것과 인간소외입니다. 이미 상품화된 노동은 인간마저 상품화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잉여존재로 전락할 지도 모릅니다. 과연 우리는 인공지능만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요? 고령의 나이에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또한 경쟁력 있는 소수의 ‘스타 유튜버’들이 유튜브를 지배하고 독점하듯, 플랫폼 시장은 소수의 기업과 인사에게 독점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플랫폼 노동을 통해 쏟아지는 일자리들이 비정규직, 임시·단기 계약직, 특수고용 형태의 가사도우미, 요양보호사, 대리기사, 음식배달과 심부름 등이 대부분이며 이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일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일자리의 상품화·파편화가 결국 인간존엄마저 침해할지 우려스럽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대에 맞는 개인의 노력도 필수적입니다. 또한 특수고용 형태로 분류되는 플랫폼 일자리에 대해 고용·실업보험과, 최저임금 및 휴식 등 기본적 보호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규제를 만들어 고용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고, 현장에서 고용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술발전만큼 우리의 생각도 성숙해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술발전에 따른 직업과 노동의 변화는 막기 어려운 흐름입니다. 개인의 대응노력과 함께 노사정(勞使政) 간 사회적 협력과 제도개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역시 강조하고픈 부분은 인식개선입니다. 바로 노동에 대한 생각, 이웃에 대한 인식입니다. 우리는 노동의 의미를 개인적 범주의 경제적 가치와 자아실현이라는 테두리만으로 묶어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노동은 본시 타인에 대한 관심, 이웃사랑, 성숙한 공동체의 건설, 나아가 초월적이고 영성적이며 ‘인간성화(聖化)’를 지향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71~272항) 또한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입니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에 대해 만일 열악한 일자리였다면 이렇게까지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누구나 좋은 환경, 양질의 일자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 하루에 6명씩 죽는 한국의 노동현실에도 다 같이 관심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합니다. 기술발전만큼 우리 생각이 건강하고 성숙하다면 어떤 위기도 지혜롭게 이겨낼 것입니다. 기술발전이라는 불안한 미래 속에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사회관계에서 더 인간다운 질서를 확립하려고 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기술의 발전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사목헌장」 35항) [가톨릭신문, 2020년 7월 19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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