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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85: 생명과 건강 - 공공성은 개인과 사회를 치유하고 건설하는 바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06 조회수2,857 추천수0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85. 생명과 건강 - "공공성은 개인과 사회를 치유하고 건설하는 바탕”(「간추린 사회교리」 150항)


의료행위 공공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부터

 

 

베드로: 신부님, 가난했지만 학자금 대출로 힘들게 의대 공부를 했어요. 한국은 외국처럼 비싼 학비를 국가에서 주는 것도 아니에요. 수련의(修鍊醫) 과정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제 친구들은 외상센터에서 한주 120시간씩 환자를 보고 있어요. 그래도 환자를 살리는 것에 사명감을 두고 일하죠. 의사라는 직업이 안정된 수입과 사회적 명망을 얻는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 하죠. 그러나 저희 의료계도 여러 가지 속 깊은 문제가 많아요. 또 최근에 의사파업 사태를 두고 안타까워요.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공성 논란

 

의대생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놓고 사회적 갈등을 빚는 가운데, 의료공백마저도 현실화되고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의료 공공성’에 대한 논란도 붉어지고 있습니다. 의료행위는 생명을 다루기에 당연히 공공성을 띠어야 한다는 주장과, 반대로 의사들도 비싼 돈을 들여 힘들게 공부했고 합당한 가치를 갖기에 공공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공공성’이란 무엇일까요? 공공성은 사적인 것과 달리 공동을 위한 성질을 의미하며 개인과 사회가 함께 시민의 삶을 지속해 나갈 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자 가치라고 합니다.(하승우, 「공공성」) 또한 이런 공공성에는 방법과 과정까지도 포함됩니다. 공공성이 지향하는 공익(公益)이 결국 사익(私益)의 희생이 아니라, 사익 간 조정을 통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이란 고대 아테네가 보여 줬던 성숙한 민주주의, 즉 자유, 책임성, 평등 나아가 종교적 가치인 사랑과 관용입니다.

 

 

공공성을 구성하는 것들

 

현실 속에서 공공성을 논할 때 중요한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갈등 그리고 인간존엄입니다. 사회에는 갈등들, 정치·이익집단의 역기능, 예기치 못한 재난 등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에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 조정과 이를 위한 대화와 타협, 참여와 개방성, 건강한 민주주의이며 정치와 사회적 합의가 이를 수행합니다.

 

또한 인간존엄은 공공성의 핵심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자본주의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폐해를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소외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든 불합리한 이유로 인간존엄이 침해될 수 없습니다. 인간존엄은 생명과 피조물에 대한 존중, 이웃과 약자에 대한 배려, 대화와 협력, 평화수호의 노력,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숭고한 희생과 봉사 등으로 이뤄집니다.

 

인간존엄을 바탕으로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 책임감, 원칙과 평등, 균등한 기회 제공, 제도적 차원의 복지와 사회 안전망 강화, 그리고 최근의 생태환경기후 문제 등도 공공성을 이루는 요소들입니다. 따라서 공공성에 대한 이해는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성찰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공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

 

‘공공성’은 가톨릭교회의 ‘공동선’ 개념과 유사합니다. 공동선이란 ‘모든 이가 인간존엄을 토대로 사회를 건설하며 얻는 과정과 결실의 총화’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64항) 종교의 핵심인 사랑과 자비는 공공성을 더 심오하게 완성합니다.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동선 자체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를 실현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며, 토론과 합의를 위한 경청과 겸손, 열린 공간이야말로 공동선을 꽃피게 하는 토양입니다. 의료행위가 공공재인가에 대한 논란도 공공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도출돼야 합니다. 공공재란 올바른 공공성을 위해 소중히 사용돼야 하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금번 의료파업 사태 속에는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공공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청됩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높아서일까요? 혹은 우리에게 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탓인지, 참된 공공성에 대한 이해가 얕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태 속에서 저도 사제로서의 삶을 반성합니다. 성직자로서 진심으로 사명감을 갖고 나의 성무를 수행했는지, 정녕 더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려 애썼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공공성을 이루는 마지막 조각은 겸손한 자아 성찰이라 여겨집니다.

 

 

“오만과 이기심 때문에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 자동적으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람들 사이의 친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참다운 사회는 구성원들이 선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과 이웃을 위해 선을 추구할 때 진리 편에 서게 된다. 자신의 선과 이웃의 선을 사랑함을 통해 인간은 공동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안정된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150항)

 

[가톨릭신문, 2020년 9월 6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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