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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87: 왕직(894~896, 908~913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1 조회수2,793 추천수0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87. 왕직(「가톨릭 교회 교리서 894~896, 908~913항)


다스리는 직무, 왕직

 

 

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홀로 남겨진 남매가 있었습니다. 동생은 부모 사고의 충격으로 갑자기 말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남매는 큰아버지에게 맡겨졌는데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고민하던 누나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생님은 먼 지방에서 밤새 차를 몰고 와 아이들을 직접 키우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남매에게 자신을 그냥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누나는 금방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동생의 입에서는 차마 엄마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중국집 배달원을 하겠다고 집을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학교가 끝나는 대로 중국집으로 찾아가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아이는 짜증을 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이 중국집으로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명이 위태롭게 됩니다. 선생님은 석 달 동안 입원해야 했습니다. 동생은 선생님을 극진히 간호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동생에게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했습니다. 동생이 그때, “엄마는 아들한테 미안한 게 왜 그렇게 많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동생이 처음으로 뱉은 “엄마!”란 말에 선생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누나는 커서 공무원이 되었고 동생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피붙이도 아닌 자신들을 위해 천사가 되어주었듯, 두 남매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작은 영혼들에게 촛불을 밝혀주는 작은 천사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 애청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선생님은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게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선생님 뜻에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스리고 길들이는 직무를 ‘왕직’이라고 합니다. 세속적인 왕직이 아니라 발을 씻어주는 봉사로써 누군가를 길들이는 직무입니다.

 

참다운 왕직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다스리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복종시키고 격정에 휩쓸리지 않고 영혼을 다스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주인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왕이라고 불릴 만합니다.”(908)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죄에 떨어집니다. 죄의 노예는 참 자유인이 될 수 없기에 왕직을 수행할 능력을 잃습니다. 왕직은 우선 자기 자신의 왕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왕다운 자유의 선물을 주시어 제자들이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 자기 자신 안에서 죄의 나라를 완전히 쳐 이기게 하셨습니다.’”(908)

 

왕직을 주교들이 수행할 때는 ‘착한 목자’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습니다. “주교는 ‘무지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896) 이런 왕직이 평신도들에 의해 보여질 때는 위 예시처럼 ‘어머니’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세상에 피를 쏟아 그들을 길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가 순종할 때까지 자녀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이기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극기와 거룩한 생활”(908)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왕직은 세상 창조 때부터 아담에게 주어진 임무였습니다.(창세 1,28 참조) 아담에게 자녀를 많이 낳으란 명령은 가르치고 길들이는 왕이 되라는 명령과 같습니다. 또 아담에게 동물처럼 사는 이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여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시키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창세 2,19 참조) 예수님께서 새 아담으로서 당신 피로 마리아 막달레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그녀의 왕이 되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알아봅니다.(요한 20,15) 이는 예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시는 에덴동산 새 아담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죄의 종으로서 동물과 다름없었던 그녀를 “마리아야!”(요한 20,16)라고 부르십니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의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요한 20,17 참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그들을 당신 신하로 만드셨듯이, 우리도 이웃들의 발을 씻어주며 더 많은 자녀를 거느린 왕이 되어야 합니다.(루카 19,11-27 참조)

 

[가톨릭신문, 2020년 9월 20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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