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활동의 구분 (1)
교회활동의 목표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 세상 안에서 존재함”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교회공동체’를 왜 만드셨을까요?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계획에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하느님 나라를 위한 보편계획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모든 이를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 몸인 교회를 구성하기, 하느님 백성을 죄로부터 해방하기,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들은 ‘그분 나라가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리며 교회와 그 구성원들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미사’의 감사송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십자가 제대 위에서 티 없는 평화의 제물로 당신을 봉헌하시어 인류 구원을 이룩하시고 만물을 당신 친히 다스리시어 그 영원하고 보편된 나라를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께 바치셨나이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 교회헌장에서 말하듯, 교회는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1항)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계획하시는 보편계획에 봉사하는 사명을 지니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중재 역할을 합니다. 이는 교회가 하느님의 계획을 교회공동체라는 경계와 틀에 가두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안에서 상을 위해 하느님 나라가 실현하는 데 도구(구원의 성사)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목헌장에서는 교회의 사명이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봉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구원이 일어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구체적인 장소임을 알려 줍니다. “천상 보화로 결합되고 부요하게 된 이 가족은 그리스도에게서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가시적 사회적 결합의 적절한 수단도’ 갖추고 있다. 이렇게 교회는 동시에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로서 온 인류와 함께 걸어가 세계와 함께 동일한 지상 운명을 체험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쇄신되고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어야 할 인류 사회의 누룩으로서 또 마치 그 혼처럼 존재한다.”(사목헌장, 40항) 그러므로 복음화의 과정 중에 있는 ‘교회의 모든 사목활동’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지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사목활동은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이 하느님을 마주하며 내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활동과, 세상안에서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2021년 2월 28일 사순 제2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활동의 구분 (2)
복음화의 네 가지 표징 ‘봉사, 친교, 증거, 전례’ 교회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기 위함입니다(“복음화 활동의 구분 ①” 참조). 또한 교회공동체에 속한 하느님 백성 모두는 좋은 지향으로 서로 협력하는 차원뿐만 아니라, 자신의 활동이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에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 구성원인 하느님 백성의 구체적 중재 활동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므로, 가시적 교회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성사적 공동체가 됩니다. 교리교육적 전망에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사적 특징을 드러내는 네 가지 표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봉사, 친교, 증거, 전례입니다. 이 네 가지 표징은, 사도행전에서 이야기하듯, 초기 교회공동체가 형성될 때부터, 곧 첫 신자들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사도 2,42-47) 초기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는 세상 안에서 ① 봉사, ② 형제애의 나눔, ③ 복음 선포, ④ 찬미의 예배를 통해 교회가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공동체의 원형임을 보여주었습니다. - 봉사의 표징: 이웃을 위한 사랑과 봉사 안에서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 - 친교의 표징: 형제애와 친교 안에서 생활하는 하느님 나라 - 증거의 표징: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 - 전례의 표징: 전례를 통해 축제와 해방의 예배가 거행되는 하느님 나라 이러한 복음화의 네 가지 표징은 바로 교회가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활동 전체 안에 깔려있는 기초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표징은 개별적으로 따로 분리될 때,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데에 한계를 지닙니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본연의 목적을 충실히 이룰 수 있습니다. 이제 다음 시간부터는 교회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성사가 되게 하는 네 가지 표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2021년 3월 7일 사순 제3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활동의 구분 (3) 복음화의 네 가지 표징 ‘봉사, 친교, 증거, 전례’ 지난주에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생활(사도 2,42-47 참조)을 통해 복음화의 네 가지 표징을 살펴보았습니다(“복음화 활동의 구분 ②” 참조). “복음화”라는 용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회의 사명과 연결되어 그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이미 ‘복음적 삶’의 모습은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복음화의 첫 번째 표징은 바로 ‘봉사’(奉仕, diakonia)입니다. ‘봉사’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입니다. 다시 말해, 봉사는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돌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봉사’라고 번역하고 있는 ‘diakonia’의 의미도 위의 사전적 의미와 일치합니다. 그런데 신앙용어로서의 ‘봉사’에는 교회 공동체의 체험에서 주어진 새로운 의미가 덧붙습니다. 바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의미입니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44-45)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 초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적극적으로 실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의 다른 부분을 보면, ‘봉사’(diakonia)의 확장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 6,1-4) 초기 교회 공동체에서 이루어진 ‘봉사’(diakonia)는 “기도”(성찬례와 전례)와 “말씀 봉사” 그리고 “식탁 봉사”를 포함하는 ‘물질적 사랑의 실천과 동시에 영적 돌봄’이었습니다. 이는 복음화를 위한 봉사의 실천에는 물질적인 차원과 영적인 차원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봉사’(diakonia)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교회가 하느님 사랑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이웃을 향해 열려있는 공동체임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로써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도구가 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2021년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활동의 구분 (4)
복음화의 네 가지 표징 ‘봉사, 친교, 증거, 전례’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초대 교회 공동체는 신자들의 일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이웃에게 번져가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공동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애와 친교를 나누는 장이었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복음화 활동의 두 번째 표징은 바로 ‘친교’(koinonia)입니다. 그리스어 koinonia(라틴어로 communio)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며 서로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랑’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를 우리말로 ‘친교’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하면서, 곧 일상 안에서 영적이고 물질적인 나눔을 실천하면서 ‘친교’(koinonia)가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신자들의 공동체는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그 자체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사도 2,44)하는 모습은 신자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고, 이는 친교와 일치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이 ‘친교’ 공동체의 형제자매들은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사도 2,45) 주었습니다. 그들은 너그러움과 자선의 마음으로 아픈 사람을 돌보고 병자를 방문하며 위로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친교’(koinonia)의 표징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환대하며 차별 없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모든 사람이 존중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한 ‘친교’의 자리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구체화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오늘날 모든 교회 공동체가 닮아가려 할 때,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게 되며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사도 2,47) 주실 것입니다. 복음화의 표징인 ‘친교’를 교회 공동체가 실현할 때, 그것은 그 자체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케리그마)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으로 ‘친교’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복음화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또는 여전히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이에게 선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 강요가 아니라 ‘매력’ 때문입니다.”(『복음의 기쁨』 14항) [2021년 3월 21일 사순 제5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활동의 구분 (5)
복음화의 네 가지 표징 ‘봉사, 친교, 증거, 전례’ 복음화의 세 번째 표징은 ‘증거’(martyria)입니다. 사실, 교회 공동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살아있게 만드는 ‘복음 선포’(케리그마)가 필요합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복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고 교회가 기쁘게 선포하는 이 구원은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당신과 하나 되게 하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한 백성으로 불러 모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혼자서 구원될 수 없습니다. 곧 고립된 개인으로나 자신의 힘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공동체 생활에 따른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고려하시어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신 이 백성이 바로 교회입니다.”(「복음의 기쁨」 113항) 복음을 삶 안에서 선포하고 증거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범은 바로 초대 교회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초대 교회 공동체가 어떠한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하였는지 알려줍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6-47)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방법은 그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일상 안에서 자비와 환대로 주님을 증거하였고, 이방인들을 초대하여 자신들의 공동체에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화는 공동체가 초대 교회 공동체의 복음 정신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고민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에 아로새겨져 있는 살아있는 유산인 ‘복음의 증거’를 지금 우리 공동체에 어떻게 새롭게 새길 것인지 모색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초대 교회 공동체가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 증거하고자 했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화의 주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 사랑의 큰 계획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류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누룩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자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세상에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그 길을 다시 걸어갈 용기와 희망과 힘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자비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모든 이가 환대와 사랑과 용서를 받고 복음의 선한 삶을 살도록 격려를 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자리입니다.”(「복음의 기쁨」 114항) [2021년 3월 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교리교육 여정] 복음화 활동의 구분 (6)
복음화의 네 가지 표징 ‘봉사, 친교, 증거, 전례’ 복음화의 네 번째 표징은 ‘전례’(Liturgia)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왜냐하면 사도직 활동의 목적이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가 한데 모여 교회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만찬을 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전례헌장」 10항) 초대 교회 공동체는 항상 기도를 삶의 중심에 두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한 공동체입니다. 이는 공동체의 신자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새겨들으며, 친교의 정신을 실천하고, 일용할 양식인 빵을 서로 나누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모든 순간을 하느님께 ‘감사 기도’로 봉헌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 공동체가 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성찬례’와 ‘기도’가 필수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복음화의 표징인 ‘전례’는 교회 공동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초대 교회가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모여서 ‘기도’한 까닭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만나고 함께 삶을 나눴던 체험이 주님의 승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례’를 통해 기도하는 삶 안에서 지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복음화를 지향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과의 친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의 첫 공동체 안에서, 믿는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이는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곧 사도들의 신앙에 근거를 두고, 사랑으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되는 교회의 기도는 성체성사로써 양육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624항)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은 전례, 모임, 공동체와 개인의 기도가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전례 행위들은 예수님께서 공동체 안에 살아계시게 하며, 교회 공동체라는 공간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자리임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전례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며, 신앙의 신비로 초대하시고, 오늘의 우리가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과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2021년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 의정부주보 11면, 김승훈 가브리엘 신부(문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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