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52. 복음과 사회교리 (「간추린 사회교리」33항)
참된 사랑만이 인간에게 생명과 희망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은 고민합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기도드립니다. 어떤 때는 웁니다. 정의만 주장하는 사람은 그게 없습니다. 더 주장하고 더 주장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부부는 사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마주 앉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신의 권리가 뭐냐?’, ‘내 의무가 뭐냐?’ 하고 자꾸 따지면 마지막에 가서 어떻게 합니까? 이혼하는 그것밖에 없습니다.”(「그리운 김수환 추기경」 중 ‘우리 시대의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에서) 더 이상의 갈등과 분열은 없어야!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답답하고 억울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사회성과 동료의식도 옅어졌고, 무기력과 우울감도 큽니다. 앞으로 조금만 참자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지만 곤궁함을 겪는 분들의 형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다른 쪽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횡행합니다. 정치권,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종교, 세대와 지역, 남성과 여성 등을 막론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초 갈등 사회’라고 진단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일부 정치권은 민생을 외면한 채 갈등을 부추기며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특히 소외되고 약한 이웃들에게 전가됩니다. 무엇이 우리에게서 사랑을 앗아갔을까? 전보다 우리 사회가 매우 각박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웃 간 정이 없고, 교류나 만남도 사라져 간다며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현대 사회 어디에서나 가장 평가절하되고 값싸진 것이 바로 따스한 사랑입니다. 곳곳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정의를 논하지만 정작 보기 드문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사랑의 고갈과 갈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인간이 물질문명의 감옥에 갇혔다고 진단하거나(막스 베버), 존재로서의 삶이 아니라 소유만을 추구한 결과라고 합니다.(에리히 프롬) 게다가 인권과 생명, 봉사와 나눔이 결여되니 당연히 사랑과 행복은 요원해진 것입니다.(알베르트 슈바이처)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한 일간지에서 권력은 곧 자리싸움이고 그것이 정치 본연의 모습이라며 현 정치판의 분위기를 ‘선거에 지면 우리 모두 죽는다’로 표현했습니다. 절박함을 일깨워 분발을 촉구한 칼럼이었으나 ‘오징어 게임’ 같은 세상을 상상하게 하니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살고 있습니다. 이겨야 하고, 지면 끝장이고, 남보다는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고. 며칠 전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고(故) 선우경식(요셉) 선생님의 유품을 정리하던 신학생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품 중 노숙인의 편지가 있었는데, 의사였던 선우경식 선생님을 ‘신부님’으로 부른 글귀가 있었더랍니다. 무료로 치료를 받은 것이 감사한 나머지 선생님을 신부님으로 부른 것이지요. 선생님께서 그를 사랑으로 인간답게 대해주셨고 그 가련한 노숙인의 마음에 사랑이 피어난 것입니다. 가톨릭교회 가르침과 「간추린 사회교리」의 핵심은 바로 사랑과 나눔입니다. 힘겨움을 냉정하게 마주해야 하는 이 현실은 엄정하지만 참된 사랑만이 우리에게 생명과 희망을 줍니다. “하느님 백성의 삶의 법칙인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모든 인간관계에 영감을 불어넣고 이 관계를 정화하며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3항) [가톨릭신문, 2022년 1월 16일,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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