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90. 첫째 계명 ① (「가톨릭교회 교리서」 2083~2085항)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그분을 더 잘 알도록 배워야 한다 어떤 선교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문명을 접해보지 못한 아마존의 오지로 들어갔습니다. 선교사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에게 문명의 이로움을 알려주며 호감을 얻었습니다. 선교사는 그들에게 신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선교사가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되자 자신의 가르침을 책 한 권에 그들 언어로 써서 남겼습니다. 부족은 선교사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하였습니다. 부족은 그 소중한 책이 사람의 손을 타 손상될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사제만 볼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사제는 책을 읽지 않고, 사원을 만들어 제단 위에 책을 놓고 매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족은 아예 책을 금고에 넣고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선교사를 기억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부족은 선교사를 기리되 그가 알려준 대로 신앙을 지켜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후 또 다른 선교사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전한 예수님은 자신들이 공경하는 선교사가 가르친 예수님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비난하는 듯한 그 선교사의 가르침을 참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 번째로 온 선교사를 이단으로 몰아 죽였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그리스도와 그 가르침을 전해준 첫 번째 선교사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예언자는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그들을 공경하였습니다. 참 예언자 예수님이 오시자 그분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식의 열쇠’는 제쳐놓고 형식적 예배나 기도의 양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영성체 횟수나 묵주기도 횟수가 중요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주님을 알려는 노력은 줄어듭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기도의 질도 함께 떨어지게 됩니다. 강론이 길어지면 싫어하고 성체를 영해도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말씀과 성찬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결국 둘은 하나이기에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도 죽습니다. 십계명의 첫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사랑하는 대상을 알고 배우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2080) 그러니 그분이 해 주신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을 더 잘 알려고 배우려 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첫 계명부터 어기게 됩니다. 하루에 그리스도를 더 알기 위해 5분도 책을 읽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신앙에 균형이 깨지는 것입니다. 전쟁영웅이 되기를 바랐던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부상을 치료하던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두 권의 책 「금빛 전설」과 「그리스도의 생애」를 읽었습니다. 이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하라는 첫 계명을 지키게 하려면 교회는 ‘지식의 열쇠’로 신자들이 더 많은 교리, 성경, 영적 지식을 공부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10월 30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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