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90. 복음과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 35항)
인간은 연대와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며 자신을 완성한다 “사람은 그 자체로 모순이요 자연의 실수일까요? 이런 물음을 품고 다시 한번 지하묘지의 길들을 따라 걸어가 봅니다. 오직 죽음 속에서 희망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만이 이성적인 인생도 희망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의 이 세상에서도 고립은 치명적이고 오로지 관계 속에 사는 것, 사랑만이 우리를 지탱하는데 … 그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이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오직 하느님이 계셔야만 사람이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도 헤아렸습니다.”(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지음, 정종휴 옮김 「희망의 이미지」 중)
유한함을 마주하며 가을 풍광과 저무는 한 해의 마지막 시간들이 일상을 수놓는 요즘입니다. 대자연과 함께 우리도 한 해의 종국을 향해 순례하고 있습니다. 곧 있을 위령 성월은 종말을 묵상하게 할 것입니다. 이해인(클라우디아) 수녀님의 시 한 소절을 읊어 드립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투른 이방인/ 언젠가는 모두가 쓸쓸히 부서져 갈/ 한 잎 외로운 혼임을/ 바다여 당신은 알고 있는가.’(이해인 수녀 ‘바다여 당신은’) 넓고 힘찬 바다 앞에서 인간의 유한함을 성찰하는 시구는 우리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뿔싸, 아등바등 살다 보니 중요한 걸 잊었네요, 우리 모두 언젠가 병들고 죽을 것을 말이지요. 그러나 비관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허무와 소멸이 두려워 죽음에 저항하는 우리지만, 동시에 한계와 약함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더 값진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잊은 사회가 가장 위험해 오늘날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물질적 번영을 누리는 때입니다. 격차와 무관심도 존재하나 모든 것이 풍요로운 때임에 틀림없습니다. 건강과 장수, 오락과 즐거움에 대한 담론이 넘쳐납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은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이며 더욱이 수고하고 애쓴 분들에게 먼저 주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자칫 물질과 풍요, 번영과 쾌락만이 목표가 되는 건 아닌가 성찰해 봅니다. 물질만이 삶의 목표가 될 때 큰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하느님을 잊은 사회가 되고 사람과 생명이 도구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여전히 다툼과 갈등이 수없이 존재하고 위선과 거짓으로 진실이 가려질 때가 많습니다. 오래도록 남는 참된 것을 위하여 아파하는 이웃들도 많고 우리의 삶도 녹록지 않지만, 오늘날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하느님의 가르침, 그리고 회심하고 변화되는 사람,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손잡아 주며 하느님의 사랑이 흐르도록 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현대사회가 멀리하려고만 하는 죽음과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필요합니다. 오히려 그런 십자가와 어두운 밤들을 통해 인간이 회심과 정화, 하느님을 만나며 삶의 변화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사회 현안을 마주하며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그 ‘사랑’입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종말과 한계를 체험하는 우리가 시급히 성찰해야 할 삶의 화두입니다. 다소 의역이 가미된 어떤 철학자의 묘비명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받고 구원받은 모든 인간은 세상 안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사랑과 정의와 연대의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신을 완성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5항) [가톨릭신문, 2022년 10월 30일,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