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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용(龍)의 상징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11-11 조회수734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용(龍)의 상징성

 

 

- 라파엘로, 성 제오르지오와 용.

 

 

동양권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용(龍)은 상서로운 영물(靈物)로 대우받고 그러기에 어디서나 환영받는 가상의 동물이다. 그런데 서양권에서는 용이 동양권과는 전혀 다르게 고약한 상징성을 지닌 괴수로 여겨지는 기피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 용과 대척되는 자리에는 서양의 여러 지역에서 두루 공경받는 성인이 있어서 두 존재 사이에 얽힌 오래된 전설이 전해 온다.

 

이 성인, 곧 성 제오르지오는 영국, 포르투갈,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도시에서는 악마의 화신인 용에 맞서 싸운 용맹한 전사로서, 그리고 동방 교회에서는 ‘위대한 순교자’로서, 또한 군인들과 보이 스카우트 대원들에게는 수호성인으로 널리 공경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와 유명세와는 달리, 정작 성 제오르지오의 생애에 대해서는 4세기 초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 신앙을 지키다 참수형으로 순교했다는 점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런 성인이 어떻게 특히 영국에서는 국기인 유니언 잭에도 성인의 표상인 십자가가 들어가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공경받게 된 것일까.

 

그것은 6세기경 이미 유럽에, 당시 상황에서는 전 세계에 성 제오르지오에 관한 신화와 전설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 많은 일화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용과 관련된 이야기다.

 

어느 날 성인이 한 도시를 지나가다가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은 그 도시에 사는 공주였고, 용에게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대기하는 중이었다. 그 도시에서는 날마다 어린 양 두 마리씩을 용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이제는 양들이 거의 바닥나 어쩔 수 없이 양 한 마리에 사람 한 명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그날그날 용에게 바쳐질 사람을 골라내게 되었는데, 성인이 그곳에 도착한 날 마침 그 지역의 공주가 제비에 뽑힌 것이다.

 

이 사연을 들은 성인은 그 도시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공주(또는 공주를 대신한 하녀)와 함께 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용이 나타나자 십자가 모양의 무기(또는 창)로 그 용을 제압했다. 그리고 용을 붙잡아서는 공주의 허리띠로 그 목을 묶어서 도시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성인은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겠는지 묻고, 그럴 의향이 있다면 용을 죽여 없애겠다고 제안했다. 그곳의 왕과 백성은 기꺼이 동의했다. 성인은 그 용을 죽였고, 그 도시에서는 2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날로 세례를 받았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전해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오르지오 성인이 정말로 용과 싸워서 공주를 구했는지, 그 용이 진짜였는지를 묻는다.

 

 

성 제오르지오와 용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서방 교회 지역의 화가들은 성 제오르지오와 용이 등장하는 그림을 자주 그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유행이 동방 교회에서 생각하는 용의 상징성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동방 교회에는 우상숭배를 괴물로 표현하는 관행이 오래전부터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사’라는 책을 쓴 에우세비우스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회에 믿을 자유를 주고 그리스도교회를 공인한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창으로 이교 신앙이라는 용(괴물)을 꿰뚫었노라고 기록하도록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을 밝힌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용은 이교 신앙 또는 이교 사상 그리고 악마를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다. 그러했기에 성 제오르지오처럼 다른 지역에 가서 새로운 신앙을 전하고 그곳에 성행하던 우상숭배며 이교 사상에 맞서 싸운 용맹한 성인들의 활약상을 전하는 데 용이 함께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선교지가 된 지역들 또한 그림에서 의인화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오래된 그림들에서 성 제오르지오 가까이에 배치된 여인과 용은 아마도 성인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지역, 곧 카파도키아 지방을 나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 제오르지오는 용의 손아귀에서, 곧 이교 사상과 우상숭배에서 카파도키아 지방이라는 여인을 구해냈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러한 그림들은 위대한 선교사요 순교자인 성 제오르지오의 선교 활동을 매우 아름답게 묘사한 것이 되는 셈이다.

 

동방 교회 지역의 미술 작품들에서 전사(戰士)의 풍모를 띤 성인이 그림으로 막 표현되기 시작한 5세기와 6세기에는 이러한 상징성이 서방 교회 지역에서는 아직 제대로 이해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서방 교회 지역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용을 실제 존재하는 괴수로 여겼고, 그러한 오해에 근거한 이야기들을 믿었던 것이다.

 

어쨌든 성 제오르지오의 상징성은 용을 등장시키는 다른 많은 그림에 빛을 비추어 주었다. 그리하여 아리우스주의 이단을 배척하며 강력하게 맞서 싸운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를 그린 그림 중에도 성 제오르지오처럼 용(아리우스주의 이단)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 생겼다. 이 경우에 용은 근본적으로 이교 신앙 또는 이교 사상에 맞서 싸우는 싸움의 상징으로 인식된 것이다. 아무튼 중세기의 여러 성인들과 주교들은 괴물들과 싸워야만 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루앙의 성 로마노는 노르망디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괴물 가고일(가고일: 중세기 유럽에서는 건축물을 지을 때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배출시켜서 빗물에 의한 건물의 침식이나 붕괴를 막고자 배출구를 지붕 또는 처마에 돌출되게 만들어 설치했다. 이 배출구는 대개 기괴한 모습의 짐승이나 새의 형상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가고일이라고 부르고 우리말로는 이무깃돌이라고도 한다. 이는 가상의 동물인 셈인데, 중세기 사람들은 가고일이 실제로 존재하는 괴수라고 여기기도 했다.)을 사슬로 묶었다. 그리고 파리의 성 마르첼로는 묘지에 살던 무시무시한 뱀을 쫓아냈다. 르망의 성 율리아노와 그의 후계자 중 한 사람인 성 파바티오스는 샘이 솟는 우물을 지키던 괴물들을 죽여 없앴다.

 

- 토레 카르파치오, 성 제오르지오와 용.

 

 

이 밖에도 많은 성인과 주교들이 신자들과 교구를 지키기 위해 괴수들과 맞서 싸운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괴수들에 대한 승리는 대체로 우상숭배나 다른 악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사실상 교회에 거짓 신을 숭배하는 것보다 더 기괴한 일이 있겠는가?

 

괴수와 맞서 싸우는 성인들에 대한 이 모든 이야기와 묘사를 굳이 한낱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성경에도 그 거룩한 책이 기록되던 시기에 이미 용이며 다른 괴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그 괴수들은 신약 시대에도 계속 존재했고, 몇몇 성인들은 실제로 그 괴수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맞서 싸웠고 물리쳤으며 또 죽이기도 한 것이다.

 

갖가지 우상숭배와 이단, 이교적인 신앙과 사상이 난무하고 성행하는 오늘날, 우리는 어쩌면 우상숭배에 맞서 싸운 성 제오르지오와 이단에 맞서 싸운 성 힐라리오의 이야기에서 무언가 알아듣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1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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